난민에서 퓰리처상 작가로…베트남계 미국인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 비평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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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타자(others)'란 단순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의미하진 않는다. 사회의 표준적 행동 양식과 어긋나는 사람, 살던 곳을 떠나 다른 장소로 이동하게 된 소수 집단, 주류 집단에 의해 차별과 배제의 낙인이 찍힌 이들을 일컫는 철학적·사회학적 개념이다.
전쟁과 난민, 식민주의, 인종차별 등의 문제를 날카롭게 탐구해온 베트남계 미국인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비엣 타인 응우옌이 이런 타자의 문제를 탐구한 '구원하거나 파괴하거나'가 번역 출간됐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영문학과 교수이기도 한 작가의 하버드대 강연을 바탕으로 '타자성'이 문학 속에서 어떻게 형상화돼 왔는지를 파헤친 문학 비평서다.
작가는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조지프 콘래드의 '어둠의 심장', 허먼 멜빌의 '모비딕' 같은 고전에 숨은 제국주의의 혐의와 인종화된 타자의 흔적을 읽어낸다.
또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부터 토니 모리슨의 '타자의 기원', 차학경의 '딕테'에 이르기까지 여러 장르와 작품을 종횡무진 오가며 타자성을 탐구한다.
특히 내밀한 자기 고백을 바탕으로 웅숭깊은 사유와 날카로운 비평을 선보인다.
이를테면 작가는 열일고여덟살 무렵 본 영화 '지옥의 묵시록'을 통해 자신의 타자성을 폭력적으로 마주하게 됐다고 고백한다.
"나 자신을 미국인이라 여겼기에 미국인의 눈으로 영화를 보았다. (중략) 윌러드 선장이 베트남 여자의 가슴에 총을 쏘는 순간 나는 두 동강 났다. 나는 살해를 저지른 미국인일까, 살해를 당한 베트남인일까?" (34쪽)
이 경험은 작가에게 내가 나를 인식하는 방식이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방식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된다.
스스로를 "베트남에서 태어났으나 미국에서 만들어졌다"고 말하는 응우옌은 사이공이 함락된 1975년 네 살의 나이로 난민이 되어 미국으로 이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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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난민이라는 용어 하나로 그의 정체성이 설명되지는 않는다.
그는 미국 사회에서 대학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지식인이자, 소설 '동조자'로 퓰리처상을 받은 명망 있는 소설가이기도 하다. 이런 복잡하고도 분열된 정체성과 타자성에 대한 감각은 그의 문학과 비평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가 됐다.
새 책에서 그는 베트남인과 미국인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문학과 예술에서의 타자성, 윤리, 작가의 책임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는 설령 전쟁의 폭력성을 고발하고 전쟁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작품에서 타자를 마냥 순수한 희생자로 그리는 것에 반대한다. 누군가의 정체성이란 그리 납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징적 폭력의 영역에서 진정한 폭력은 타자를 죽이는 장면을 담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목소리를 지우고 그들을 오롯이 혼란에 빠진 순수한 희생자로만 그리는 것이다." (34쪽)
타자를 '목소리 없는 존재'로 규정하는 것도 거부한다. 모든 사람은 목소리를 갖고 있으며, 다만 그 목소리를 빼앗겼을 뿐이란 것이다.
또 작가의 책임은 타자의 고통을 대신 말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더 근본적으로 누가 왜 침묵을 강요당하며, 어떤 힘이 이들의 목소리를 앗아갔는지를 묻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응우옌은 타자를 하나의 정체성이나 단일한 서사로 고정하려는 시선을 거부하고, 문학과 예술이 인간과 비인간, 피해자와 가해자, 내부자와 외부자 사이에서 무수히 흔들리는 타자의 복잡함을 담아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그는 고통받고 소외된 타자에 대한 진심 어린 연대를 호소한다.
"타자의 삶을 지키려 하지 않고 우리의 삶만 방어한다면 그 삶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그러면 누구와 연대해야 하는가? 실천하기 어렵겠지만 대답은 간단하다. 바로 바퀴벌레, 괴물 취급을 받는 이들이다." (102쪽)
글쓰기 방식 역시 매우 흥미롭다. 자신의 문학론에 대한 강연이자 공감과 연대의 윤리를 탐구한 철학서이며, 치열한 자기 고백을 담은 자서전으로도 읽힌다. 응우옌은 이 책으로 2025년 전미도서 비평가협회상 비평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김영사. 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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