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 공언한 이란, 물밑에선 협상 지속…“시위 재발 전 합의 필요”
한겨레
미국과 이란 간 무력 충돌로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대원들이 사망하고 이란이 보복을 공언했음에도, 이란 지도부는 협상판을 깨지 않는 이중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2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겉으로는 미국의 공격을 휴전 위반으로 규정하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사망 사실 발표까지 늦추며 외교적 타결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재와 전쟁 장기화, 극심한 인플레이션 등으로 경제난이 심화하는 가운데,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가 재발하기 전에 합의에 도달하려는 이란 지도부의 절박함이 협상판을 유지시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이란 수석 협상 대표인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 의장은 미군의 공습 이후에도 카타르 도하에 머물며 중재국과 협상을 이어갔다. 25일 카타르에 도착한 갈리바프는 해외 동결 자산 해제와 호르무즈해협 재개방 등 양국의 핵심 쟁점을 논의한 뒤 26일 늦게 테헤란으로 귀국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란 정부가 이번 공격으로 혁명수비대원 여러 명이 숨졌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즉각 공표하지 않았으며, 이는 협상 흐름이 깨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처였다고 전했다. 이란 외무부가 “어떠한 침략 행위도 반드시 응분의 대응을 받게 될 것”이라며 강경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내놓은 것과는 온도 차가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란 당국자들과 아랍권 중재국 관계자들을 인용해, 이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치적 승리를 안겨줄 만큼 핵 프로그램에서 양보하지 않으면서도 심각한 경제난을 완화할 재정적 숨통을 확보하는 것을 협상의 두 가지 핵심 목표로 삼고 있다고 보도했다. 구체적으로는 동결 자산 해제와 원유 수출 재개를 통해 경제적 활로를 찾는 방안을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내 온건 개혁파는 경제 악화가 또다시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로 번지기 전에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덧붙였다.
이란 정부의 압박감은 인터넷 통제 완화에서도 드러난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전날 88일간 이어지던 전국적 인터넷 차단을 일부 해제하도록 지시했다. 뉴욕타임스는 장기 봉쇄로 누적된 경제적 타격과 민심 이반을 의식한 조처라고 분석했다.
앞서 미국과 이란은 호르무즈해협 주변에서 다시 충돌했다. 미 중부사령부(CENTCOM)는 혁명수비대 소속 고속정들이 호르무즈해협에 기뢰를 설치하려 했다며 이란 선박과 미사일 발사 시설을 타격했다고 밝혔다. 혁명수비대는 미군 드론을 격추하고 전투기에 대응 사격을 가했다고 주장했으나, 미 국방부는 드론 격추 주장을 부인했다.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조회 0·스크랩 0·공유 0
댓글이 없습니다.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