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한국-유럽연합(EU) 공동성명과 한·미·일 협의 등에서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긴 것을 비난하는 성명을 잇따라 내놓으며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북한은 14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한-미가 확장억제 협의체인 핵협의그룹(NCG) 회의를 열고 북한 비핵화 목표를 재확인한 것과 관련해 “교전 상대방의 핵무장 해제를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어불성설이며 공허한 망상”이라고 비난했다.
앞서, 한-미는 지난 11일 서울에서 핵협의그룹 제6차 회의를 열고 “북한 비핵화에 대한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는 내용을 담은 공동언론성명을 발표했다. 이어 12일에는 한·미·일 3국의 북한 문제 담당 당국자들이 일본 도쿄에서 만나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와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결의 이행 노력을 재확인했다.
이에 대해 북 외무성 대변인은 “집단적 성격을 띤 미일한의 핵대결 소동과 국제무대에서 주권국가에 위헌행위를 강요하려는 서방나라들의 불순한 기도를 엄정히 규탄배격한다”고 했다. 이어 “미국과 추종세력들의 무의미한 반공화국 비난 수사와 핵위협 공조는 되돌릴 수 없는 우리의 핵보유국지위에 아무러한 영향도 미칠 수 없다”며 “‘비핵화'는 최종적으로 되돌릴 수 없이 종결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북한 외무성은 이에 앞서 지난 13일 ‘10국 대변인’ 명의로 담화를 내어, 최근 한-유럽연합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북한 핵개발과 북러 밀착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데 반발하면서, 이재명 대통령이 ‘평화의 가면을 내던졌다'고 맹비난했다.
외무성 10국 대변인은 한-유럽연합 공동성명이 “우리 국가에 대한 명백한 주권침해, 엄중한 적대행위로서 지금껏 입 닳도록 떠들어 온 ‘체제존중', ‘적대행위 불추구'와 같은 위장간판을 스스로 내팽개친 것이나 다름없다”고 한국을 겨냥했다. 이어 “한국의 집권자가 거치장스럽게 쓰고 있던 ‘평화'의 가면을 내던졌다”며 “한국 집권자는 이번 대결 선언으로 조한(북남) 사이에 ‘평화공존'은 있을 수 없으며 영원히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 우크라이나 괴뢰들과 속통이 같은 공범임을 세계 앞에 입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조선과 아시아대륙 침략을 위한 미국의 ‘단검'이 바로 한국의 실체이고 숙명”이라고 비난했다. 외무성 10국은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선언한 북한이 기존 대남기구를 폐지한 뒤 외무성 산하에 신설된 대담 업무 담당 조직이며, 10국 대변인은 이번에 처음 등장했다.
이 대통령과 안토니우 코스타 유럽연합 정상회의 상임의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지난 10일 브뤼셀에서 정상회담을 한 뒤 “러시아-북한 간 불법적 군사협력을 강력히 규탄”,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상 핵보유국으로 결코 인정되지 않을 것” 등의 문구가 담긴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청와대는 이날 북한의 한-유럽연합 공동성명 비난에 대해 “정부는 긴 안목을 가지고 한반도 평화공존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유럽연합도 한반도의 긴장 완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우리 정부의 정책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북한의 이런 움직임은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과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의 ‘다극질서 파트너’로 지위가 격상된 북한의 자신감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남북관계를 넘어, 중국, 러시아와 대등한 파트너로서 한미, 한미일, 한-유럽연합 관계를 겨냥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외무성 담화가 한국을 ‘우크라니아 괴뢰들과 공범’, ‘미국의 단검’으로 지칭하는 의도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외무성 대변인 담화는 메시지의 격과 대상을 글로벌 차원으로 확대”했다고 짚었다. 임 교수는 “북한의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라는 강요이자 북·중·러 군사협력의 불가피성을 정당화하고 실제 추진하기 위한 빌드업 과정”이라면서, “한·미·일의 안보 공조에 맞서 북중, 북러 동맹을 축으로 하는 정면 돌파 노선을 더욱 강화해 나갈 것”으로 예상했다.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로마/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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