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봄소리(33)는 요즘 공연계에서 눈에 띄게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는 배우다. 2012년 뮤지컬 ‘우리들의 청춘 롤리폴리’ 앙상블로 데뷔해 ‘마리 퀴리’(안느 코발스키 역), ‘노트르담 드 파리’(플뢰르 드 리스 역), ‘차미’(차미 역), ‘리지’(리지 역), ‘광주’(문수경 역), ‘보니 앤 클라이드’(보니 파커 역) 등에서 강한 여성 서사를 이끄는 배역을 맡으며 존재감을 키워왔다. 이번엔 한국 창작 뮤지컬의 대표 레퍼토리 ‘서편제’의 송화가 됐다.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에서 만난 이봄소리는 “연습 과정은 고통스럽고 후회도 많았지만, 막상 무대에 오르니 보람을 느낀다. 송화는 계속 만나고 싶은 인물”이라고 말했다.
지난 4월30일 광림아트센터 비비시에이치(BBCH)홀에서 개막한 ‘서편제’(7월19일까지)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로 널리 알려진 이야기를 무대 위 소리와 음악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2022년 원작 계약 종료 뒤 한동안 멈췄다가 새 시즌으로 돌아왔다. 이번 시즌 송화 역에는 이자람, 차지연, 이봄소리, 시은이 함께 캐스팅됐다.
뜻밖에도 이봄소리는 판소리 전공자가 아니다. 국립전통예술중·고를 나왔지만 전공은 음악연극이었다. 그는 “‘서편제’ 때문에 지난해 말 판소리를 처음 배웠다”며 웃었다. “작품을 너무 좋아해서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배울 시간이 너무 짧다 보니 ‘수박 겉핥기가 되면 어떡하지’ 걱정이 컸죠. 일주일에 두번, 세번씩 레슨을 받았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판소리의 결이었다. 연극학과 입시를 위해 민요를 익힌 경험은 있었지만 판소리는 달랐다. 그는 “민요는 꺾기가 많은데 판소리는 쭉쭉 앞으로 뻗는 소리가 많았다. 악보가 아니라 선생님 소리를 듣고 그대로 받아야 하는 것도 어려웠다”고 했다. 혼자 연습하다 보면 소리가 조금씩 달라져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하는 고달픈 반복이 계속됐다. 송화가 자기 소리를 찾아가는 캐릭터라면, 배우 이봄소리의 연습 과정도 또 하나의 소리 수련이었다.
처음 그가 떠올린 송화는 거대한 예인의 이미지였다. “한이 많고, 예술가로서 깊이를 지닌 인물이라 생각했어요.” 그러나 연습을 거치며 생각은 바뀌었다. “송화도 어린 마음에 아버지에게 반항할 수 있고, 동생과 함께 있고 싶어 하는 소녀였죠. 사람 냄새가 나는 인물로 접근해야 나중에 깊어지는 모습이 더 울림 있게 다가가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담도 컸다. ‘서편제’는 국악신동으로 불렸던 이자람과 베테랑 차지연이 오랜 시간 쌓아온 작품이기도 하다. 이봄소리는 두 배우를 “전설”이라고 불렀다. “넘어서겠다는 마음은 아니었어요. 전설은 전설인 이유가 있으니까요.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하고, 배울 수 있는 건 배우자는 학생의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저만의 색깔이 찾아진 것 같아요.”
그가 이전에 맡았던 인물들과 비교해도 송화는 결이 다르다. “‘마리 퀴리’의 안느가 사회적 부조리에 맞서는 인물이고, ‘리지’가 억압에 대한 복수로 통쾌함을 주는 인물이라면 송화는 자신과의 싸움을 하는 사람이에요. 떠날 수 있었는데도 남고, 결국 다시 소리의 길로 돌아가죠. 그 묵묵함과 단단함이 존경스러웠습니다.”
극의 하이라이트 ‘심청가’ 무대는 가장 큰 산이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하면 잘하는 것처럼 들릴까”에 매달렸지만, 시간이 지나며 감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점점 감정 쪽으로 생각하니까 자연스럽게 소리가 깊어지더라고요. 그래도 ‘심청가’가 가장 어렵고 부담이 큰 장면인 건 맞아요.”
이봄소리에게 ‘서편제’는 인생 작품이 됐다. “제가 그 안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기회가 된다면 40살, 50살에도 송화를 하고 싶어요.”
“내 성대가 늙기 전까지는 써보자는 마음이에요.” 송화가 끝내 자기 소리를 찾아가듯, 무대 위에서 자신의 소리를 더 또렷하게 찾아가는 이봄소리가 당차게 말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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