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북한 비핵화를 포기하지 말되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게 현실적이지 않냐”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다. 충분히 고민해 보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두 정상은 북한이 핵보유국 인정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북핵 문제 해법과 북미 대화 재개 방안에 대해 심도 있는 의견을 교환했다.
이 대통령은 1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유럽 순방과 주요 7개국 정상회의(G7) 참석 결과 브리핑을 열어 지난 17일(현지시각) 프랑스 에비앙레뱅에서 열린 주요 7개국 정상회의 공식 만찬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나눈 대화 내용을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지역 내 평화 정착과 이란 핵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에 지지를 표명했고, 한반도의 긴장 완화와 지속가능한 평화 정착을 위해 역할을 해주실 것도 다시 한 번 당부했다”며 “한반도 평화가 동북아는 물론 세계 평화와 안정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데 공감하고, 앞으로도 관련 사안에 대해 긴밀한 소통, 건설적 기여를 함께 모색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만찬장에서 트럼프 대통령 바로 옆자리에 앉아 2시간가량 소통했다.
두 정상의 대화 테이블에 오른 가장 중요한 주제는 ‘북핵 문제’였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께서는 북한이 핵무기를 현실적으로 보유하기 전 단계에서 뭔가 가능한 조치를 했어야 하는데, 아쉽다는 말씀을 하셨다”며 “저도 그 점에는 동의하지만, 지금 다른 나라를 대하는 방식으로 북핵 문제에 접근하면 안 된다는 말씀을 분명히 드렸다”고 말했다. 북한은 2019년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종료된 이후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박차를 가해왔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은 이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생각을 보였고, 그게 고민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지난해 처음 제시한 ‘비핵화 3단계론’(동결→감축→완전한 비핵화)을 재차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북한은 핵 보유를 인정해야 대화를 하겠다고 하고, 국제사회 입장에서 비핵화를 포기할 수 없으니 대화 자체가 되지 않는다”며 “그래서 비핵화를 포기하지 말되 단계적으로 가야 한다.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게 현실적이지 않냐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긴 시간 (얘기)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다고 해서 충분히 고민해보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주장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과거와 같은 방식의 비핵화 접근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는 게 이 대통령의 판단이다.
또 북한 문제 진전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피스 메이커’, 우리가 ‘페이스메이커’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우리 문제는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데 왜 미국 대통령에게 그런 표현을 했느냐고 지적을 한다면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북한과 평화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길을 여는데 대한민국 스스로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너무 많은 것을 망가뜨리고 스스로 차단했고, 공격적 태도를 통해 모든 길을 봉쇄해버렸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그러면서 “(북한은) 북한체제 안전에 관건적 역할을 하는 것은 미국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현실적으로 정전협정의 당사자는 한국이 아니다”라며 “미국을 중심으로 (북한과) 대화하도록 하고, 우리는 상황을 조성하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대화 재개에 관심을 보였지만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답답해했다고 이 대통령은 전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대화 재개) 방법이 뭐냐고 물어봤다”며 “그래서 저는 제재와 압박으로는 효과가 없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북·러 간 군사 협력을 하면서 매우 제재의 실효성이 떨어졌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가 상황이 어려운데 북한에 그렇게 많은 도움을 줬겠느냐”고 재차 물었고, 이 대통령은 “러시아 경제가 크기 때문에 조금만 도와줘도 북한에 크게 도움이 된다. 북한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사상 최고였다”고 말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핵이 더 확산되지 않게 하는 것이 이익이다, 지금 제재가 거의 실효성이 없다는 말씀을 드렸고, 많이 공감했다”며 “미국 재야 군사전문가들도 현실에 기반한 구체적 대안을 놓고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런 지적도 살펴보시라는 얘기도 했다”고 전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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