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미록 | 임상심리사
“임상심리사입니다” 하고 소개하면 열번 중 다섯번은 ‘임상병리사’로 알아듣습니다. 처음에는 ‘심리’와 ‘병리’를 어떻게 헷갈릴 수 있지? 의아해했지만, 딱 한 글자만 다르니까 착각할 만도 하지요. 임상심리사의 일을 단순하게 설명하면, 심리 평가와 심리 상담, 심리 치료 등을 합니다.
이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품이 많이 드는데요, 저는 임상심리학 전공으로 석사 과정을 마쳤고요, 대학병원에서 3년 동안 수련을 받았답니다. 그 뒤에 한국임상심리학회에서 주관하는 시험을 보고, ‘임상심리전문가’라는 자격증을 받을 수 있었어요. 석사 과정도, 3년의 수련 시간도 자격증을 얻기 위해서는 필수였습니다. 이 지난한 과정들은 당연해 보이기도 합니다. 몇년에 걸쳐 공부하고, 수련받고, 경험을 쌓지 않으면 어떻게 사람의 심리를 검사하고, 해석하고, 또 상담하거나 치료할 수 있겠어요.
임상심리사는 병원이나 상담센터뿐 아니라 정신건강복지센터, 학교, 군, 교도소 같은 곳에서도 일하고 있어요. 저는 대학병원에서 일하고 있는데요, 흔히 심리검사라고 하면 정신건강의학과를 떠올리겠지만, 소아청소년과에서 일하고 있답니다. 태어난 지 8개월 된 영유아부터 20대 성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환자들을 만나고 있어요.
검사는 보통 한시간 반에서 길면 세시간까지 걸립니다. 그 시간 동안 저는 검사자를 주의 깊게 관찰합니다. 어떤 표정으로 말하는지, 말투나 억양은 어떤지, 습관처럼 보이는 행동이 있는지,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같은 것들을 살피면서, 관찰을 통해 발견한 모습과 검사 결과를 종합합니다. 보고서는 진료의 근거가 되기도 하고, 장애 등록이나 교육·치료 계획을 세우는 데 활용되기도 하지요.
일터가 다양한 만큼 편차가 있겠지만, 저처럼 검사를 하는 임상심리사는 주로 혼자 일하는 편입니다. 따로 마련된 검사실에서 환자를 만나고, 검사 후에는 보고서를 쓰는 작업을 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독립적으로 일한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런 임상심리사들이 최근 함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어요. 정신건강복지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한다는 소식 때문입니다. ‘정신건강 임상심리사’는 보건복지부가 관할하는 ‘정신건강 전문요원’ 중 하나인데요, 정신건강 전문요원은 각각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협력하도록 설계된 제도로, ‘정신건강 간호사’ ‘정신건강 사회복지사’ ‘정신건강 작업치료사’ ‘정신건강 임상심리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신건강 전문요원의 공통 업무는 정신질환이 있는 분들이 지역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즉 재활과 사회 적응을 지원하고 필요한 서비스에 연결해주는 것입니다. 직역마다 고유한 개별 업무가 명시되어 있어요. 그중 정신건강 임상심리사의 개별 업무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심리 평가·교육, 그리고 심리 상담입니다.
그런데 이번 법 개정 추진에는 심리 상담을 공통 업무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심리 상담은 단순히 대화를 나누거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이 아닙니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 역시 준비돼 있어야 하지요. 그렇지 못할 경우 내담자의 어긋난 믿음은 단순히 실망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어요. 도움을 청하러 간 곳에서 상처받은 뒤에는, 또 어디에서 도움을 구할 수 있을까요? 다시 도움 청할 용기를 쉽게 낼 수 있을까요? 개정 방향은 심리 상담이 어떤 교육과 수련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하는지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정신재활센터에서 정신건강 사회복지사 선생님들과 함께 일한 적이 있어요. 임상심리사와 사회복지사의 일은 ‘돌봄’이라는 측면에서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아주 달랐습니다. 임상심리사가 심리라는 좁고 깊은 영역을 다룬다면, 사회복지사는 법과 제도, 다양한 서비스를 파악해 그것을 필요한 사람에게 연결해주는, 생활 전반에 밀착한 돌봄을 하고 있었습니다. 각자의 전문성이 달랐기 때문에 서로 보완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입니다. 직역과 무관하게 많은 분이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지난 17일 보건복지부와 심리·상담 학회들은 1차 간담회를 거쳐 정신건강 전문요원 모든 직역이 참여하는 공식 협의체를 구성하고, 향후 관련 법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고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도움을 요청할 때 준비된 전문가가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 직역 간 갈등을 넘어 무엇이 진정 필요한 것인지 대화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삶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댓글이 없습니다.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