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찬 | 경제개혁연대 소장·고려대 경영대 교수
지난 8일 한국이에스지(ESG)기준원(이하 기준원)은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 수탁자 책임에 대한 원칙) 개정안을 발표했다.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이 있다. 수탁자 책임 활동 내부 지침을 공개하고 실제 수행을 의무화한 점, 기업가치와 주주가치 제고에 목소리를 내는 관여 활동의 단계적 강화 방안을 내부 지침에 포함하도록 한 점이 그러하다. 또 협력적 관여 활동이 가능함을 명시한 점, 적용 자산군을 국내 상장 주식에 국한하지 않은 점, 점검 대상에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와 환경·사회 요소를 포함한 점, 코드 점검을 정례화하고 개별 참여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 활동 보고서 제출과 이행 점검을 명시한 점도 손에 꼽힌다.
하지만 현재의 개정안으로 코드 내실화를 통한 기관투자자 역할 강화라는 이재명 정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첫째,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 점검 기관인 스튜어드십 코드 발전위원회(이하 발전위원회)는 전원 비상근 민간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어, 실무를 지원하는 기준원의 역량이 사실상 운영의 핵심을 좌우한다. 그러나 현재 담당 인력은 2~3명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책임 투자와 의결권 행사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준원이 구조적 이해 상충에서 자유롭지 않은데도 발전위원회 위원을 직접 위촉한다는 점이다.
둘째, 발전위원회가 부실 이행 기관의 코드 참여를 배제할 수 있는지가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다. 피드백 제공과 우수 기관 시상으로 어느 정도 이행을 유도할 수 있겠으나, 이러한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부실 이행 기관이라도 점검 결과와 무관하게 참여기관 지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코드의 원조국인 영국에서는 수탁자 책임 정책과 활동 보고서를 점검해 코드 참여 자격을 박탈할 수 있다. 덕분에 기관투자자들은 코드 준수에 실질적 유인을 갖게 되고, 코드 참여기관 여부 자체도 외부에 의미 있는 신호로 작동한다.
셋째, 지난해 12월 발표된 스튜어드십 코드 내실화 방안에는 참여 기관투자자의 이행 보고서 공개와 발전위원회의 이행 점검 결과 공시가 명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에는 이에 관한 내용이 빠져 있다. 공개 의무가 없으면 발전위원회의 이행 점검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외부에서 확인할 길이 없어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렵고, 이행 점검 결과 공시를 명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과도 어긋난다. 반면 영국은 참여기관 목록과 각 기관의 수탁자 책임 활동과 성과 보고서를 매년 공개하고 있다.
넷째, 이번 개정안 역시 코드 원칙 준수 면제 사유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어, 관여 활동은 물론 의결권 행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아도 참여기관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특정 원칙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충실히 설명하기만 하면 준수 의무가 면제되고, 투자 정책이나 내부 역량을 이유로 관여 활동의 범위를 줄일 수도 있다. 투자 축소·배제·철회가 수탁자 책임 활동에 새로 포함되면서 적극적인 주주 활동 없이도 책임을 다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투자 정책이나 운용 규모를 이유로 수탁자 책임에 필요한 역량과 전문성을 갖추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문제다.
다섯째, 기존 참여기관의 지위 유지 요건과 신규 참여 절차에 관한 규정이 전혀 없다. 기존 참여기관은 이행 점검 없이 지위가 자동 연장되고, 신규 기관도 등록만으로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누구나 들어올 수 있고 누구도 걸러지지 않는 코드로는 실질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재명 정부가 스튜어드십 코드 내실화라는 대국민 약속을 지키고 코리아 프리미엄을 실현하려면 개정안을 대폭 손질해야 한다. 먼저, 이행 점검은 인적 역량이 충분하고 이해충돌에서 자유로운 금융감독원이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영국에서도 금융감독기구 중 하나인 재무보고위원회(FRC)가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 점검을 맡고 있다는 점이 참고가 된다. 둘째, 수탁자 책임 정책의 이행 여부뿐 아니라 실제 활동과 성과를 검토해 참여 자격을 부여하거나 배제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이행 점검 결과와 참여기관 목록, 각 기관의 수탁자 책임 활동과 성과 보고서를 매년 공개해야 한다. 넷째, 코드 미준수 인정 사유를 줄여 역량과 의지가 부족한 기관투자자의 형식적 참여를 차단해야 한다.
이러한 개선이 이루어지더라도 스튜어드십 코드의 연성 규범적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코드 참여가 기관투자자의 자율에 달려 있고, 미이행 시 제재도 참여 배제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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