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이 종전 양해각서(MOU) 서명 나흘 만인 21일(현지시각) 스위스에서 후속 협상에 돌입했다. 이란이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을 이유로 호르무즈해협 재봉쇄를 선언하는 등 협상은 시작부터 치열한 장외 힘겨루기 속에 예정보다 이틀 미뤄 열렸다. 애초 핵 문제와 제재 해제 등을 다룰 예정이었지만, 레바논 사태가 긴급 의제로 추가돼 협상 첫 순서에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과 이란 대표단은 이날 오후 스위스 중부 뷔르겐슈토크에서 마주 앉았다. 미국 쪽에서는 제이디 밴스 부통령을 비롯해 스티브 윗코프 중동특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참여했다. 중재국인 파키스탄의 셰바즈 샤리프 총리와 아심 무니르 육군참모총장, 카타르 대표단도 합류했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국회의장이 이끄는 이란 대표단에는 아바스 아라그치 외교장관 등이 파견됐다. 특히 이란 중앙은행 총재와 국영석유공사 사장 등 경제 부문 고위 당국자들도 포함됐다.
오전에 각각 중재국들과 양자 회담을 한 양국 대표단은 오후 들어 파키스탄·카타르를 포함한 4자 회담을 열었다. 밴스 부통령은 회담에 앞서 “이것은 역사적인 만남”이라며 “새로운 시작을 통해 이란과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카타르 외교부는 성명을 내어 최종 합의 조건을 협상하기 위한 전문가 그룹과 양해각서 이행 상황을 점검하는 ‘후속 그룹’도 설치됐다고 설명했다.
회담은 호르무즈해협을 둘러싼 긴장감이 팽팽한 가운데 열렸다. 하탐 알안비야 중앙군사본부는 20일 호르무즈해협 통항 폐쇄를 선언했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군사작전이 ‘레바논을 포함한 모든 전선에서 군사작전을 즉각적이고 영구적으로 종료한다’고 명시한 미-이란 양해각서 제1조를 위반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미국은 이란의 발표가 실제 물리적 봉쇄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반박했다. 미 중부사령부 쪽은 “선박 통항은 계속되고 있으며 미군은 이런 상황이 유지되도록 감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레바논 전선은 이번 협상의 최대 불안 요인으로 떠올랐다. 미-이란 양해각서는 모든 전선에서 군사작전을 중단하도록 규정했지만, 정작 레바논 전선 당사자인 이스라엘과 헤즈볼라는 합의의 서명 당사자가 아니다. 19일 양쪽이 극적으로 휴전에 합의한 뒤에도 상대에 대한 공격은 이어져 판을 흔들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가 먼저 발사체 50여발을 쏴 대응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군의 ‘점령 지역’ 확대 시도를 저지했다고 반박했다. 양쪽 모두 자신의 군사행동을 ‘방어’로 규정하면서 충돌이 반복되는 구조다.
이날 스위스 회의에서도 ‘레바논’이 핵심 의제로 다뤄졌다. 밴스 부통령 역시 “핵 문제와 레바논 휴전에서 진전”이 “(협상의) 두가지 핵심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란은 4자 회담이 열리기 직전까지 레바논 ‘전쟁 중단’을 협상 전제조건으로 강조했다.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엑스(X)를 통해 “이번 회의는 양해각서 이행 상황을 점검하기 위한 것”이라며 “특히 레바논을 포함한 모든 전선에서 전쟁이 종료되지 않을 경우 최종 합의 협상에 들어갈 수 없다”고 압박했다.
반면 이스라엘은 강경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스라엘 카츠 국방장관은 이날 “레바논 내 위협 제거 작전에 어떠한 제한도 없다”며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안전지대에서 철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레바논 공격을 이어가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향한 정치적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그는 20일 트루스소셜에 ‘네타냐후 재선의 불안정한 카드를 트럼프가 쥐고 있다’는 제목의 온라인 매체 ‘저스트 더 뉴스’ 기사를 공유했다. 이 기사는 네타냐후 총리가 미-이란 합의를 계속 방해할 경우 이스라엘 총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중립을 지키거나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방식으로 태도를 바꿀 수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이스라엘 공영방송 인터뷰에서도 “누가 출마하는지 봐야 한다”며 “네타냐후와 좋은 관계지만 그는 좀 더 이성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에는 트루스소셜에 “이란은 레바논의 대리세력(헤즈볼라)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지난주처럼 이란을 다시 매우 강하게 타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곽진산 기자 wonchul@hani.co.kr
댓글이 없습니다.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