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경기 침체와 원자재 가격 폭등, 고금리 장기화로 중소 하도급 업체들의 줄도산 위기가 최고조에 달한 가운데 국내 대형 건설사들이 우량 파트너사(협력사)를 지키기 위한 전방위적 생존 게임에 돌입했다.
하도급 업체의 부실이 종합 건설사의 경영 타격으로 직결되는 연쇄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해 실질적인 상생 협력 체계 마련이 시급해진 모습이다.
롯데건설과 대우건설은 각기 다른 방식의 하도급 지원책을 선보이며 공급망 안정화에 나서고 있다.
하도급 업체의 부실이 원청사의 현장 마비와 재무적 타격으로 이어지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 양사의 최우선 과제로 거론된다.
22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롯데건설은 지난 18일 하나은행 및 신용보증기금과 공동으로 체결한 1200억원 규모의 ‘상생 및 동반성장을 위한 금융지원 업무협약’을 기점으로 실질적인 파트너사 선별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협약은 롯데건설이 20억원, 하나은행이 60억원을 출연해 마련한 총 80억원의 재원을 바탕으로 진행된다.
신용보증기금이 이를 담보 삼아 파트너사에 최대 10년 장기 대출 보증서를 발급해 주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전국 건설 현장의 하도급 업체들을 점검하고 자금난이 심각한 핵심 협력사부터 우선적으로 자금을 수혈하겠다는 취지다.
업계에서는 롯데건설이 금융기관의 대출 심사 문턱을 넘을 수 있는 우량 협력사들을 중심으로 추천서 발급 절차를 준비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나아가 이번 자금 주선의 성과를 채권단과 투자자들에게 적극적으로 피력하며 자사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우발채무 리스크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을 잠재우고 신용도를 방어하는 대외 행보에도 속도를 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번 협약은 대기업이 일방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부 기관의 보증을 통해 협력업체의 생존을 도움으로써, 결과적으로 자사의 부실 위험까지 함께 막아내는 ‘생존형 상생’ 형태로의 체질 변화라는 해석이다.
롯데건설과 대우건설이 선택한 리스크 관리 전략과 위기 극복 방식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롯데건설의 경우 원청 분담금 20억원을 활용해 1200억원 규모의 보증 대출을 주선하는 금융 공급 위주의 방식을 취한다.
다만 하청업체 부실 시 신용보증기금이 빚을 대신 갚아주는 구조여서, 기업의 리스크를 국가 재정으로 떠안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대우건설은 협력업체에 지급할 돈 중 일부를 보관해 두던 유보금 제도를 없애고 물가가 오르면 공사비도 함께 올려주는 ‘대금 연동제’를 도입했다.
협력업체의 자금 사정을 직접 개선해 주는 정공법을 택한 것으로 보이나, 위험을 나눠 맡을 안전장치 없이 공사비 인상 비용을 대우건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만큼 자사 자금 사정에 가해질 재무적 부담을 어떻게 관리할지가 핵심 과제로 꼽힌다.
두 회사가 이처럼 서로 다른 조치를 취하게 된 핵심 배경으로 업계는 각 사가 처한 재무적 여건과 경영 환경의 차이를 지목한다.
롯데건설은 수년째 건설업계의 가장 큰 불안 요소로 꼽히는 부동산 PF 관련 대출 보증 부담과 회사채의 만기를 연장해야 하는 자금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하청업체의 도산으로 현장이 마비될 경우 금융권이 자금을 조달해주지 않거나 회수(마진콜)에 나설 수 있어, 공급망 안정을 통한 준공 리스크 관리가 시급한 것으로 파악된다.
대우건설의 경우 최근 신용평가사들로부터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Negative)으로 부여받으며 등급 방어 압박이 커진 상황이다.
일부 현장에서의 공사비 갈등과 하도급 자금난 여파로 현장이 일시 마비되는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통제해야 할 필요성도 맞물려 있다.
서울 한남동, 여의도, 강남권 등 주요 정비사업지마다 두 회사가 입찰 경쟁을 벌이고 있는 만큼 협력사 관리 역량이나 대외 신인도 지표가 향후 수주전의 주요 변수가 될 것이라는 게 공통된 반응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지원책이 단기적인 처방은 될 수 있으나 전반적인 건설 경기 침체 속에서 시장 전반의 리스크를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진단한다.
동시에 대형 건설사들의 협력사 리스크 관리 기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다.
국내 중소 건설업체 한 관계자는 “대출을 알선하거나 대금을 빨리 주는 것만으로는 임시 조치에 그칠 수 있다“면서 “협력사의 자금난을 막으려면 결국 오른 원자재 값을 공사비에 제대로 반영해 주고, 충분한 공사 기간을 챙겨주는 조치가 기본이 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국내 국책연구기관 한 관계자는 “하청업체의 건전성이 원청사의 재무 안정성, 수주 신인도와 직결되는 구조가 정착되고 있다”며 “양사가 제시한 모델이 대기업들의 리스크 관리 표준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도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다만 금융기관의 보수적인 심사 문턱 때문에 정작 한계 상황에 직면한 하청업체들이 소외되는 현상이 없도록 감시 체계가 있어야 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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