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하면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 등 굵직한 대기업 공장이 먼저 떠오른다. 이런 이유로 여행지보단 공업도시로 보는 시선이 강하다. 하지만 울산엔 대왕암공원, 태화강국가정원, 울산대공원, 간월재 등 볼거리가 의외로 많다. 대표 여행지 대왕암공원에는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해상 출렁다리가 있다. 길이 303m 다리를 건널 때 스릴감이 ‘끝내준다’. 공원 앞 광장엔 먹거리촌이 형성돼 있다. 다양한 가게가 성업 중이다. 그중에 ‘김씨네 마카롱 공장’이 있다.
이 집 마카롱은 특별하다. ‘한국식 마카롱’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준다. 마카롱은 서양에서 온 간식이다. 달걀흰자와 아몬드가루 등으로 빚은 과자 사이에 잼이나 버터크림 등을 채워 만드는 디저트다. 이 집 마카롱에는 콩가루가 묻어 있다. 울산 특산물 가자미를 형상화한 약과도 마카롱에 올라가 있다. 인기 아이스크림 ‘돼지바’를 형상화한 마카롱도 있다.
지역에서 ‘가성비 좋은 마카롱 가게’로 알려진 이 집은 김지연(37)씨와 그의 남편 김관욱(38)씨가 운영한다. 마카롱 5개 한묶음이 9800원이다. 지연씨는 병원 등에서 장애인 직업 치료사 등으로 일했던 이다. 관욱씨는 장례지도사를 하다가 현대자동차 생산직 계약사원으로 일했었다. 이들은 2019년 창업에 도전했다. 대부분의 자영업자처럼 이들도 창업 이유에 ‘경제적 문제’가 있었다.
“신랑이 가업(자동차 부품회사)을 이으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파산하고 말았지요.” 지연씨의 말이다. 부부는 좌절하지 않았다. 지연씨는 작은 중공업 회사에 들어가 경리 일 등을 봤다. 경리 일을 그만둔 뒤엔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했다. “답례품 같은 걸 만들어 파는 쇼핑몰이었는데, 꽤 잘됐다”며 웃었다. 2019년 그는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했다. 어릴 때부터 빵과 과자 만들기를 좋아했던 그다. 당시 현대자동차에서 일하던 남편 관욱씨에게 창업을 제안했다. 계약직이라도 현대자동차다. 아쉽진 않았을까? 관욱씨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미래가 보장되지 않았고, 언젠가 자영업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고 했다. 주점에서 호탕하게 만나 사랑을 키운 김씨 부부는 그렇게 새 삶을 시작했다.
“레시피는 제가 다 잡았고요. 지금 생산 파트는 남편 담당이랍니다.” 관욱씨를 바라보며 말을 잇는 지연씨 표정에 환한 희망이 묻어 있었다. “공장에서 만드는 것과 다를 게 없어요. 공장에는 기계가 있고, 여긴 (직접 만드는) 내가 있는 거죠.”(관욱씨)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밝다. 어려움은 그저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아무리 긍정적인 사람이라도 창업은 어두운 터널 앞에서 세상 두려움을 온전히 제 몫으로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시장에서 떡집을 해야지, 뭔 마카롱이냐. 마카롱이 뭐냐’라고들 했어요. 식빵 전문점이 유행하던 때인데요. 사람들이 ‘미쳤다’고 했어요.” 이들이 지역 전통시장 대송농수산물시장에서 처음 가게를 열었을 때 들은 소리다. 규모는 고작 26~30㎡(8~9평) 정도. 낙담도 사치라고 생각했다. “언제든 오면 사 갈 수 있게 영업했어요. 모든 인터넷 판매 플랫폼에 올렸어요.” 부부는 쉬지 않았다.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며 더 열심히 일했다. 지름 5㎝, 무게 40g짜리 김씨 부부네 마카롱은 그런 과정을 거쳐 태어났다. 1년을 버티자 조금씩 손님이 많아졌다. 2~3시간이면 바구니가 텅 비었다. 한입에 쏙 들어가는 ‘미니 마카롱’이 대박을 쳤다. 지름 1.8㎝, 5g짜리 마카롱이었다. “코로나 때라 누구나 마스크를 쓰던 시절이었잖아요. 마스크를 살짝만 내리면 되는 미니가 인기를 끌었죠.” 4가지 맛이 섞인 ‘미니 마카롱’ 7개 묶음 가격은 2800원이다.
개업한 지 1년6개월 뒤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부부는 하고 싶은 게 많았다. 마카롱 체험 행사도 진행하고 싶었다. 몇년 전부터 꾸준히 해온 장애인 복지관 후원도 계속하고 싶었다. 2층짜리 지금 가게가 맞춤했다.
모든 게 순탄해 보이기만 했던 2024년, 부부 마음에 불안이 창호지에 먹이 번지듯 스며들었다. “경기는 코로나 때보다 더 안 좋고, 대왕암공원 출렁다리도 생겼는데 관광객 수는 더 줄었죠.” 그때 구원투수처럼 나타난 이가 강지훈(41) 관광두레 피디(PD)였다. “2년간 피디님과 함께하고 있는데 피디님은 우리의 자존심이고요, 제 숙제를 다 해결해주는 분이죠.” 지연씨의 말이다. “저보다 더 많이 통화해요.” 관욱씨가 웃으며 거든다. “그러네요. 남편보다 더 많이 얘기하네요.” 웃음꽃이 터졌다.
김씨는 2년 전 울산 동구청 공고란에 붙은 관광두레 사업체 선정 공고에 응모해 강 피디를 만났다. 관광두레는 지역 주민이 주도하는 관광사업체를 발굴·육성해 지속가능한 지역 관광 생태계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장기적으로 지역 경제에 일조하게 하는 큰 그림이 깔려 있다. 2013년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시작된 것이 2020년 한국관광공사로 이관돼 지금에 이르렀다.
지역 관광사업체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일을 관광두레 피디가 한다. 일종의 지역 활동가인 셈이다. 피디들은 선정된 업체에 컨설팅, 교육, 홍보, 법률·세무 지원 등도 한다. 현재 40개 기초지자체 대상 201개 주민사업체가 관광두레 사업 지원을 받고 있다. 피디는 전국에 37명이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관광두레 피디를 선정한 뒤 피디 주도로 주민사업체를 선발하고 창업 판로 등을 개척하도록 지원한다. 피디 1명당 3~5개 업체를 관리한다. 피디가 지역과 밀착된 이여야 사업 효과를 볼 수 있다. 관광두레 사업체로 선정되면 5년간 피디의 각종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현재 울산 동구에서 선정된 업체는 ‘김씨네 마카롱 공장’을 운영하는 주식회사 필링과 슬도 해녀가 채취한 돌미역귀로 피낭시에 등 건강 디저트를 생산하는 주식회사 더가득, 울산 유일의 요트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요트탈래 등 5개 업체다. 이들을 챙기는 이가 강 피디다.
강 피디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울산에 정착했다. 울산극동방송 피디 겸 아나운서를 지냈으며 웨일웨이브 협동조합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자녀가 5명인 다둥이 가정의 가장인 그는 “도시(서울)의 경쟁을 벗어난 삶을 꿈꿔왔다”고 했다. “울산 동구는 바다와 숲이 가까이 있고 자연이 넉넉한 곳”이라며 지역 사랑을 드러냈다. 그는 “주민사업체 분들을 성장·발전시키는 일이다 보니,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던 업체들이 조금씩 성장해서 나름의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을 볼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의 선정 기준은 명확하다. “한국관광공사의 선정 기준이 있지만, 내 나름의 기준은 관광두레 사업의 핵심 가치”라고 했다. 그가 꼽는 핵심 가치는 지역성, 공동체성, 지속가능성이다. “이런 가치를 기준으로 당장 준비돼 있지 않은 업체라도 대표가 발전에 동의하는지를 살핀다”고 덧붙였다.
지연씨는 “한계에 부딪혔을 때 도움을 많이 받았다. 무엇보다 교육과 컨설팅받는 게 좋았다”고 말했다. “제 성격이 ‘얼렁이 덜렁이’ 하는데 피디님은 ‘이거 하셨어요? 이거 되겠어요?’ 하며 채근도 하고 격려도 해주셔서 좋았습니다.” 담임 선생님처럼 방향타를 제시하는 스승이라고 했다. 이제 지연씨는 강 피디와의 ‘연결’을 통해 새로운 꿈을 꾼다. 장애인 마카롱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할 생각이다. 주민 대상 프로그램도 진행할 계획이다. 이제 4살 된 아들은 엄마를 “마카롱”이라고 부른다. 그의 따스한 열정이 대왕암공원 앞바다 파도를 타고 퍼져나가고 있다.
지연씨처럼 열정 가득한 이는 또 있다. 주식회사 더가득의 김태은(51) 대표다. 그는 황인지(48)·이송실(46)씨와 뭉쳐 더가득을 만들었다. 지역 공동체 ‘한아름나눔사회적협동조합’ 회원이었던 이들은 관광두레 사업체 선정 공고에서 구성원이 3명이어도 참여 가능하다는 안내를 보고 덜컥 회사를 설립했다. 김 대표는 “울산 지역에 거주하는 해녀가 딴 돌미역귀로 ‘돌미낭시에’ 등을 만드는 슬도수산을 만들었는데, 마케팅, 디자인, 제품 개발 등의 컨설팅에 피디님 도움이 컸다”고 말했다.
매년 1월께 선정 업체 공고가 나간다. 관광두레 누리집(tourdure.visitkorea.or.kr/home)을 확인하면 된다. 최근 ‘청년 관광두레 플러스 사업’을 추가로 진행 중이다. 청년이 선정 대상이며, 오는 30일까지 지원하면 된다. 자세한 설명은 관광두레 누리집에 나온다.
울산/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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