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카 노숙자가 연매출 100억 CEO로…'충무로 전설' 박동훈의 인생사 (백만장자)
픽콘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가 리어카 노숙과 넝마주이로 시작해, 연 매출 100억 원 광고 회사 CEO를 거쳐 이제는 길거리 미술관 기획자로 인생 2막을 살아가는 '충무로 전설' 박동훈의 인생사를 조명하며 깊은 울림을 안겼다.
박동훈의 집은 '금손 기획자'다운 섬세한 감각과 독창적인 안목이 곳곳에 녹아든 인테리어로 눈길을 끌었다. 특히 한류스타 배용준이 사용했던 '전 세계 200대' 한정판 TV, 故 이건희 회장이 사용했다는 리그넘 바이티, 일명 '이건희 나무'로 제작한 벽 오브제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어서 화려한 성공 뒤에 감춰진 박동훈의 가슴 아픈 과거도 공개됐다. 경남 산청 지리산 자락에서 외할머니와 단둘이 살았던 그는 "부잣집 대청마루에 놓인 누룽지 물을 몰래 떠다 먹으며 배고픔을 견뎠다"고 털어놓을 정도로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중학교 졸업 후 학비가 없어 어머니를 찾아 상경했고, 리어카를 끌며 호떡 장사를 하던 어머니와 우여곡절 끝에 재회했다. 어머니와 서울에서 맞은 첫날밤, 집이 없어 버스 종점 화장실 옆에 리어카를 세운 뒤 바닥에 은박지를 깔고 잠을 청했다. 박동훈은 "그것이 서울에서의 첫 집이었다. 그것도 너무 좋았다"고 회상했다. 이후에는 아침·저녁 물을 주는 조건으로 알로에 농장의 비닐하우스 한 칸을 빌려 생활하게 됐다.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내 공간이 생겨 자랑스러웠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며 당시의 벅찬 감정을 전했다.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던 박동훈은 뛰어난 그림 실력을 인정받아 예술고등학교로 편입했지만, 비싼 학비를 감당할 수 없어 결국 학업을 포기해야 했다. 이후 충무로 길거리에서 버려진 물건을 주워 모으는 넝마주이로 시작해 스티커 떼기, 납땜 일을 하며 생계를 이었다. 하지만 그는 "종이를 주울 때도 그림이 있는 부분은 따로 모아 공부 재료로 삼았다"고 말할 정도로 그림을 향한 배움을 멈추지 않았다. 인쇄 담당으로 디자인 회사에 입사한 뒤에도 도전은 계속됐다. 그는 "그림을 그려서 사장님 책상 위에 슬쩍 올려뒀다. 다음 날 출근하면 제 그림이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었다"고 말했다. 수차례 좌절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한 은행의 로고 디자인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됐다. 이후 여러 대기업의 광고 콘티를 담당하게 되면서 3년 만에 디자인 실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그리고 1992년, 29세의 나이에 자신의 회사를 창업해 연 매출 100억 원 규모로 성장시키며 승승장구했다. 박동훈은 "학연, 지연, 인연이 하나도 없었던 제게 충무로는 최고의 학교였다"며 자신을 키워준 공간에 대한 고마움과 깊은 애정을 고백했다.
EBS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는 매주 수요일 밤 9시 55분 방송되며, 방송 이후에는 넷플릭스·Wavve 등 OTT에서도 시청할 수 있다.

박동훈의 집은 '금손 기획자'다운 섬세한 감각과 독창적인 안목이 곳곳에 녹아든 인테리어로 눈길을 끌었다. 특히 한류스타 배용준이 사용했던 '전 세계 200대' 한정판 TV, 故 이건희 회장이 사용했다는 리그넘 바이티, 일명 '이건희 나무'로 제작한 벽 오브제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어서 화려한 성공 뒤에 감춰진 박동훈의 가슴 아픈 과거도 공개됐다. 경남 산청 지리산 자락에서 외할머니와 단둘이 살았던 그는 "부잣집 대청마루에 놓인 누룽지 물을 몰래 떠다 먹으며 배고픔을 견뎠다"고 털어놓을 정도로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중학교 졸업 후 학비가 없어 어머니를 찾아 상경했고, 리어카를 끌며 호떡 장사를 하던 어머니와 우여곡절 끝에 재회했다. 어머니와 서울에서 맞은 첫날밤, 집이 없어 버스 종점 화장실 옆에 리어카를 세운 뒤 바닥에 은박지를 깔고 잠을 청했다. 박동훈은 "그것이 서울에서의 첫 집이었다. 그것도 너무 좋았다"고 회상했다. 이후에는 아침·저녁 물을 주는 조건으로 알로에 농장의 비닐하우스 한 칸을 빌려 생활하게 됐다.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내 공간이 생겨 자랑스러웠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며 당시의 벅찬 감정을 전했다.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던 박동훈은 뛰어난 그림 실력을 인정받아 예술고등학교로 편입했지만, 비싼 학비를 감당할 수 없어 결국 학업을 포기해야 했다. 이후 충무로 길거리에서 버려진 물건을 주워 모으는 넝마주이로 시작해 스티커 떼기, 납땜 일을 하며 생계를 이었다. 하지만 그는 "종이를 주울 때도 그림이 있는 부분은 따로 모아 공부 재료로 삼았다"고 말할 정도로 그림을 향한 배움을 멈추지 않았다. 인쇄 담당으로 디자인 회사에 입사한 뒤에도 도전은 계속됐다. 그는 "그림을 그려서 사장님 책상 위에 슬쩍 올려뒀다. 다음 날 출근하면 제 그림이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었다"고 말했다. 수차례 좌절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한 은행의 로고 디자인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됐다. 이후 여러 대기업의 광고 콘티를 담당하게 되면서 3년 만에 디자인 실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그리고 1992년, 29세의 나이에 자신의 회사를 창업해 연 매출 100억 원 규모로 성장시키며 승승장구했다. 박동훈은 "학연, 지연, 인연이 하나도 없었던 제게 충무로는 최고의 학교였다"며 자신을 키워준 공간에 대한 고마움과 깊은 애정을 고백했다.
EBS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는 매주 수요일 밤 9시 55분 방송되며, 방송 이후에는 넷플릭스·Wavve 등 OTT에서도 시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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