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투명성 순위가 의미하는 것[MT시평/김범준]
머니투데이
지난 18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2026년 회계투명성 평가에서 한국은 70개국 중에서 55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60위에서 5단계 상승했지만 여전히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회계투명성은 기업의 경영자를 대상으로 '감사 및 회계 관행'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해 현장의 의견을 평가한다. 우리나라의 회계투명성 순위는 기업효율성 34위, 경영관행 49위와 비교해도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과거 회계투명성 순위는 2016년 대우조선 분식회계 사건으로 최하위인 61위까지 추락했으나, 2021년에는 회계개혁으로 37위까지 상승하였다. 2022년 오스템임플란트 횡령사건 등으로 53위로 추락한 후 2024년 41위로 다소 개선됐다. 작년 회계개혁 후퇴와 회계법인의 감사보수 덤핑이 심화되면서 다시 60위로 하락했다. IMD 회계투명성 평가 순위가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살펴볼 필요는 있다.
회계는 자본시장의 효율적 자원배분을 위한 핵심 인프라다. 투명한 회계정보는 경영자와 투자자 간의 정보비대칭을 감소시켜 기업의 자본조달 비용을 낮춘다. 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20~30%를 소유한 지배주주가 직접 경영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지배주주인 경영자는 강력한 리더쉽으로 투자나 혁신을 주도할 수 있지만, 이미 경영권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자본시장의 일반주주들을 위해 양질의 회계정보를 제공할 유인은 낮다. 우리나라는 기업지배구조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9년 주기적 지정제, 표준감사시간 및 내부회계관리 감사 등 회계개혁을 추진했다. 하지만, 기업들은 회계개혁을 불필요한 규제로 인식하고 지속적인 완화를 요구해 왔다. 정부는 기업들의 요구를 수용하여 표준감사시간을 의무에서 권고로 완화하고, 연결내부회계관리제도 감사도 유예했다. 최근에는 주기적 지정제에서 자유수임으로 전환된 기업들의 감사보수가 30% 가까이 하락하면서 부실감사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결국, 우리나라 회계 및 감사시스템이 회계개혁 이전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회계개혁으로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었지만, 기업, 회계법인 및 정부의 관행과 인식은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업은 강화된 회계감사를 불필요한 규제 비용으로 인식했고, 회계법인은 수익 확대에만 집중했다. 정부도 규제 완화로 정책 방향을 선회했다. 하지만, 새로운 제도가 관행의 변화와 인식의 개선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사회의 신뢰수준이 낮은 경우 자본시장에서 신뢰를 쌓는 일은 더 어렵다. ESG 공시가 세계 최대 뮤추얼펀드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의 주주 서한에서 시작된 것처럼 회계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관투자자를 비롯한 주주들이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작년 상법개정을 통해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도록 명문화했다. 자본시장의 회계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의 일관성 있는 회계정책 추진과 함께 자본시장 참여자들의 적극적인 목소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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