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의회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세를 불리는 ‘남성우월주의’(남성주의·masculinisme)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성별을 근거로 사람의 우열을 가르는 이 생각이 민주주의 근간을 해치고, 테러 모의로까지 이어져 사회 안전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의회 보고서는 정부가 남성주의를 사회 문제로 공식화해 대응할 것을 권고했다.
‘성별 우월감’으로 고립·거절감 달래
프랑스 상원의 베아트리스 고슬랭(공화당), 올리비아 리샤르(중도연합), 로랑스 로시뇰(사회당) 의원은 24일(현지시각) 기자회견을 열어 초당적 조사 보고서인 “남성주의: 여성에 대한 새로운 공세”를 공개했다. 이들이 지난해 11월부터 100여명의 정부 당국자·전문가를 청문하고, 온라인에 유통되는 남성주의 콘텐츠를 분석한 결과물이다. 프랑스 의회가 공식 문서로 남성주의를 공론장에 올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보고서는 남성주의를 “여성의 권리를 말살해, 궁극적으로 우리 민주주의적 토대를 해체하려는 사회·정치적 운동”으로 규정한다. 남성주의가 온라인 ‘밈’을 넘어 목적과 조직을 갖춘 정치 운동이 됐다는 것이다. 성별 평등 원칙을 공격하고, 여성 발언을 무력화하며, 여성들이 수십년의 운동으로 신장시킨 권리를 무너뜨리는 게 이 운동의 주된 목표로 꼽힌다.
서슴없이 드러내는 여성혐오가 이들의 공통된 무기다. 여성을 인격 없는 성적 대상으로 낮잡아 보거나 성적 불만족의 책임이 여성에 있다고 보고 증오하는 식이다. 남성이 여성과 잠자리 갖도록 유혹하는 법을 가르치는 ‘픽업 아티스트’, 여성과의 교류를 스스로 피한다면서도 여성을 통제하기를 원하는 ‘자기 길을 가는 남성’(믹타우·MGTOW), ‘인셀’(비자발적 독신자) 등이 대표적이다.
보고서는 “이 담론은 모순적인 구조를 갖는다. 남성을 자신에 적대적으로 변한 사회의 피해자로 묘사하면서도, 성별 중 남성이 우월하다는 위계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신병리·심리학자들은 이런 시각의 밑바탕에 자기 처지에 대한 불만이 깔려있다고 봤다. 연애 관계를 거절당한 “굴욕감”, 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인한 “사회적 고립”, 가족 문제로 “지위가 하락했다는 느낌”을 받은 이들이 선천적 차이인 ‘성별’을 근거로 우월함을 주장하는 것이다. 자기가 백인종이라는 사실, 근육 같은 신체·유전적 특징 역시 남성주의 커뮤니티에서 우열을 구분 짓는 기준이 된다.
가정으로 들어온 혐오 밈
광고 수익을 노린 소셜미디어(SNS)와 인플루언서들은 이런 풍조에 기름을 붓는다. 밈·유머·게임 클립 등에 남성주의 코드를 넣어 클릭을 유도하고, 재미있는 주류 문화로 만드는 것이다. 이런 콘텐츠는 유튜브·틱톡·인스타그램의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사용자에게 반복적으로 노출된다. 더블린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젊은 남성의 경우 인터넷을 하다가 평균 26분 만에 남성주의 콘텐츠를 추천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아동보호 시민단체 ‘e-앙팡스’의 사뮈엘 콩블레즈를 인용해 남성주의가 “가랑비에 옷 젖듯”, “체계화된 이데올로기에 대한 공개적 동조보다는 문화적 침투를 통해 더 많이 진전된다”며 “콘텐츠와 표상을 통해 여성·남성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 점차 바뀐다”고 썼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생각이 SNS를 넘어 일상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10대 20대 젊은층이 또래 집단에 도는 여성 혐오 용어를 가정에서 쓰고, 남성주의가 주장하는 ‘진짜 남성’의 기준대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성관계 시 콘돔 사용은 남자답지 못하다’고 설파하는 남성주의 콘텐츠를 본 남성의 35%가 콘돔 사용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답했다. 이 비율은 25∼34살에서 45%에 이르렀다.
르몽드에 따르면 로시뇰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남성주의에 근거해 (가정에서) 권력을 행사하려는 젊은 남성들을 상대하게 된 딸, 어머니, 자매들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다”며 “남자아이를 홀로 키우는 미혼모들에게 특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테러 요주의’ 10여명 감시 대상
특히 일부 남성주의 그룹은 프랑스 당국의 ‘요주의 테러 위협’에 오를 정도로 과격화됐다. 프랑스 국내보안국(DGSI)은 상원 청문에서 “급진 남성주의 분파인 인셀은 폭력에 기울어져 있다. 여성에 대한 경멸적 시각을 퍼뜨리고, 성폭행·살인 같은 강압적 수단을 통해 남성 및 백인의 우월성을 회복하자고 촉구한다”고 보고했다.
실제로 지난 3월 포르투갈에서 옛 동거인 두명을 살해한 프랑스인 세드릭 프리종은 평소 남성주의 공동체에서 교류하며 “아버지 권리 운동가”라고 주장해왔다. 앞서 지난해 7월 프랑스 생테티엔에서는 자신이 ‘인셀’이라고 주장한 18살 남성이 칼 두자루를 들고 고등학교 근처를 돌아다니다 국가반테러검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국내보안국은 이외에도 이런 성향을 바탕으로 테러를 벌일 가능성이 있는 10여명의 21살 미만 남성을 감시 대상에 올려두고 있다.
보고서는 “인셀이 급진화한 경로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학교 괴롭힘, 사회적 고립, 심리적 문제, 기능부전 가정, 성폭력 관련 트라우마가 점철돼 있다”고 분석했다.
상원은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정부가 “남성주의 용어를 공식화해 이 문제를 공론장의 중심에” 놓고, “남성주의 관찰과 예방·대응 공공정책을 조정하는 단일 조직”을 세우는 게 첫번째다. 온라인 혐오 콘텐츠 범람을 막기 위해 “성차별적·여성혐오적·남성주의적 콘텐츠의 수익 창출·광고 수입을 차단”하고, “온라인에서의 성차별적 모욕에 대해 경범죄 벌금을 신설”하는 제안도 나왔다.
보고서는 또 모든 학년 교육과정에서 “정서적·관계적·성적 삶에 관한 교육의 실효성을 보장”하고 “미디어 교육 안에 알고리즘, 인플루언서, 플랫폼 작동 방식에 대한 비판적 이해를 포함”시켜 학생들을 보호하자고 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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