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인플레이션의 시대[우보세]
머니투데이
[우리가 보는 세상]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올여름 유럽을 덮친 조기 폭염의 기세가 매섭다. 프랑스와 영국, 이탈리아 등 곳곳에서 기온이 40도를 넘나들면서 전력 수요 급증과 산불 우려가 커지고 있다. 휴교령이 내려지고 인명 피해도 잇따른다. 지구 반대편 태평양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세계 기상당국들은 '슈퍼 엘니뇨'가 발생할 수 있다며 경고 수위를 높이고 있다. 엘니뇨는 태평양 바닷물이 평년보다 따뜻해지면서 전 세계 강수량과 기온 패턴을 바꾸는 현상이다. 지역에 따라 가뭄과 폭우, 폭염을 유발할 수 있다.
문제는 기후 변화가 더 이상 날씨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금융시장과 중앙은행들이 주목하는 것은 기후와 물가의 관계다. 과거에는 전쟁이나 팬데믹, 유가 급등이 대표적인 인플레이션 요인으로 꼽혔다. 하지만 이제는 폭염과 가뭄, 홍수 같은 이상기후도 물가를 움직이는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원리는 단순하다. 폭염은 농작물 생산량을 줄이고 가뭄은 수자원을 고갈시킨다. 홍수는 생산시설과 물류 거점을 침수시켜 공급망을 교란한다. 생산이 감소하고 운송 비용이 늘어나면 결국 소비자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세계 곳곳에서는 올리브유와 커피, 코코아 등의 가격이 기후 충격으로 요동쳤다. 올해 인도는 엘니뇨 영향으로 사탕수수 생산량이 감소하자 설탕 수출을 제한했고, 멕시코에서는 극심한 가뭄 여파로 토마토 가격이 불과 1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뛰었다.
더 우려되는 것은 기후 충격이 더 이상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에는 1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했던 기후 이변이 이제는 몇 년 주기, 심지어 매년 반복되는 '뉴노멀'로 자리 잡고 있다. 경제학자들이 '기후 인플레이션'을 경고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잠깐 지나가는 공급 충격이 아니라 반복되는 이상기후가 전 세계 물가 상승 압력을 구조적으로 고착화시키고 있다는 진단이다.
바르셀로나 슈퍼컴퓨팅센터와 유럽중앙은행(ECB) 연구진은 최근 연구에서 극단적인 폭염만으로도 2035년부터 전 세계 인플레이션을 매년 0.3~1.2%포인트 추가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연구에 참여한 막시밀리안 코츠 박사의 표현대로 우리는 "매년 새로운 경제적 충격이 상시화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기후변화의 충격은 더 이상 뉴스 화면 속 태풍과 산불에 머물지 않는다. 마트 진열대에서 수시로 앞자리가 바뀌는 식료품 가격표나 해마다 늘어나는 냉방비 고지서의 형태로 우리 지갑을 직접 파고든다. 그리고 지구가 인류에게 보내는 청구서의 금액은 앞으로 더 커질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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