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한 켠이 내달부터 석 달여 간 이 땅의 먹거리 유산들이 활개 치는 레스토랑 무대로 바뀐다.
차린 메뉴는 시공을 초월한다. 3000년 전 한반도 벼농사와 쌀 문화의 시원을 알린 청동기 시대 볍씨들이 영업개시를 알린다. 뒤이어 1500년 전 돌고래, 청어, 방어, 남생이, 성게, 굴, 조개, 소라 등을 거대한 항아리에 넣어 선조의 큰 무덤 앞에 일렬로 늘어놓았던 신라 왕족의 제사음식이 펼쳐진다. 비슷한 시기 남도의 고대 집터와 들녘에서 나온 탄화된 메줏덩어리들과 삼천 년 전의 고소한 맛을 간직한 들깨 종자들도 각각 자리를 찾아 놓였다. 달걀인지 꿩알인지 헷갈리는 새알 넣은 신라인의 장군 병도 등장한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고대의 도마 유물이, 국민화가 박수근이 한국전쟁 시기 그린 굴비 옆 도마 그림과 만나며 13세기 강화도의 고려 장군에게 바치는 달콤한 꿀 청자 항아리도 끼어들었다. 벽에 걸린 음식 그림들도 녹록지 않다. 천재 화가 김홍도와 대가 김득신이 그린 먹방 같은 풍속도 그림과 당대 문인들에게 삼계탕을 떠올리게 했던 대가 변상벽의 암수탉 그림이 식욕을 동하게 한다.
전세계에 이른바 케이(K) 푸드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진 한국 전통 음식문화를 조명하는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이 7월1일부터 시작된다.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2에서 열리는 전시회에는 삼천 년 전 불탄 볍씨, 18세기 천재 화가 김홍도의 명화 ‘새참’, 지난 세기 국민화가 박수근의 ‘도마 위의 굴비’, 17세기 천재 문인 허균의 음식추억록 ‘도문대작’, 꿀을 담았던 13세기 고려시대 청자 매병 등이 줄줄이 나온다. 무려 51개 기관이 손잡고 488건 684점(보물 5건 5점, 국가민속문화유산 2건 6점)을 모아놓은 역대 최대 규모의 음식 유산 전시 잔치이자 케이(K)-푸드의 뿌리를 조명한 국내 최초의 식문화 종합 전시다. 수천 년 이어져 온 밥상 이야기를 고고학적 유산, 조선 왕실의 의궤, 문인의 미식 기록, 회화 속 밥상 풍경, 오늘날의 모습과 전문가 인터뷰까지 한 이야기 속에서 어우러지게 구성했다.
크게 두 개의 주제로 꾸렸다. 1부 ‘삶과 함께 한 우리 밥상’, 2부 ‘자연이 빚은 우리 밥상’으로, 밥상을 삶의 기록과 자연에 대한 응답이라는 두 축으로 바라본다. 우리가 어떻게 먹어왔는가를 다루는 1부는 밥상의 주인공 ‘밥’에서 출발한다. 여러 곡물 가운데 ‘우리’라는 공동체를 만든 삼천 년 전 불탄 여주 흔암리 출토 볍씨(청동기시대)와 다양한 시루, 솥으로 쌀이 밥상의 주인공이 되기까지 여정과 의미를 짚는다.
‘밥상의 완성’은 밥과 국, 반찬으로 이루어진 한식상 조합과 이에 따라 발달한 숟가락 젓가락 문화에 주목한다. 백제 왕과 왕비를 위한 식기인 6세기 무령왕릉의 숟가락과 젓가락, 5·7·9첩의 상차림을 보여주는 19세기 말 양반가의 조리서 ‘시의전서, 총 96종의 국물 요리 레시피가 담긴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1936년 판본) 등 옛 조리서에 담긴 요리제법, 다기한 식기류, 소반을 만나볼 수 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3~4세기 부산 기장군 고촌리 출토 도마와 국민화가 박수근(1914~1965)의 명작 ‘도마 위의 굴비’(1952년)가 처음 만나 고대인과 근대인이 밥상을 차리는 손길을 함께 떠올리게 한 장면도 관심을 모을 것으로 보인다. ‘따로 또 함께 한 밥상‘에서는 18세기 천재 화가 김홍도(1745~1806 이후)의 ‘주막’과 ‘새참’, 김득신(1754~1822)의 ‘강가에 모여 먹고 마시다’ 등 국가 지정 보물 그림 세 점이 나란히 전시된다. 주막, 들판, 강가에서 홀로 또는 함께 밥을 먹는다는 특징을 보여준다. 1부 마지막은 ‘백성과 함께 한 임금의 밥상’ 편으로 정조의 8일간 일상식이 담긴 ‘원행을묘정리의궤’(1797)와 헌종의 할머니 순원왕후의 육순 잔치 장면이 담긴 ‘통명전에서 열린 왕실 잔치’(1848년) 등으로 조명한다.
우리가 무엇을 먹어왔는가를 다루는 2부의 첫 주제는 ‘팔도 밥상, 계절 밥상’이다. 먼저, 국가가 기록하고 관리한 맛과 개인이 기억하는 맛으로 팔도의 특산물을 보여 준다. ‘홍길동전’의 작가로 알려진 허균(1569~1618)의 ‘도문대작’(17세기)은 유배 중 기억 속 팔도 별미를 불러내어 적은 17세기 조선 미식가의 맛 기록이다. 윤용(1708~1740)의 풍속화 ‘나물 캐기’와 박수근의 ‘봄’(1940년대)이 나란히 전시된 공간은 우리 밥상에서 나물이 가진 의미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봄나물 문화를 보여준다.
신라 서봉총(6세기)에서 출토된 해산물 담긴 항아리, 천마총(6세기)의 조류 알 담긴 장군, 인삼·백출과 함께 해야 더 큰 공을 세울 수 있다는 글이 적힌 변상벽(1730~1775)의 ‘닭과 병아리’, 야외에서 고기 구워 먹는 풍경이 담긴 성협(19세기)의 ‘고기 굽기’ 등으로 해산물과 고기 등 우리가 오래도록 사랑해 온 식재료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낼 참이다. ‘내일을 위한 밥상‘은 자연이 준 선물들을 어떻게 저장하고 손질해 왔는지를 이야기한다. 광주 신창동에서 출토된 기원 전후의 나무 문짝, 정월 대보름날 오곡밥과 함께 묵나물을 먹었던 풍습이 기록된 ‘동국세시기’(1849년) 등이 전시되며 냉장고가 없던 시절 식재료를 어떻게 보관했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풀어 준다.
2부의 마지막은 ‘시간과 손길이 만든 밥상’으로 발효와 양념 이야기를 다룬다. 우리 밥상에는 기다림의 시간이 있고 여기에 더하고 섞어 버무려 낸 솜씨로 맛을 잡았다. 가장 오래된 메주의 원형으로 추정되는 3~5세기 불탄 콩 덩어리, 젓갈을 사용한 김치 조리법이 담긴 가장 오래된 16세기 조리서 ‘주초침저방’ 등으로 우리의 발효 음식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일깨운다. 삼천 년 전에도 고소한 맛을 냈을 불탄 들깨(함평 외치리, 청동기시대), 고려시대 강화도에 보낸 달콤한 선물 꿀이 담긴 청자 매병(태안 마도 2호선, 보물) 등으로 밥상 밑바탕을 이룬 양념 역사를 짚는다. 장욱진(1917~1990) 대표작 중 하나인 ‘독’(1949년)과 변월룡(1916~1990)의 ‘어머니’(1985년) 등도 나와 옹기를 둘러싼 한국의 정서를 느낄 수 있다.
밥상을 차리는 과정에서의 소리와 다양한 의성어·의태어 표현, 음식을 만드는 조리 영상(온지음 맛공방 협조)과 이미지, 조선 지식인이 즐긴 상추쌈 먹는 법 읽기 등을 통해 전시장 곳곳에서 맛을 떠올릴 수 있도록 했다. 10월25일까지. 개막 직후인 1~5일은 무료관람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도판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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