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계혈통이란 없다 [한채윤의 비 온 뒤 무지개]
한겨레
한채윤 |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지난 6월9일, 성평등가족부는 자녀의 성을 출생 신고 때 부모 협의로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제5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발표했다. 현행 민법 제781조는 자녀가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는 부성 우선주의가 원칙이라 만약 어머니의 성을 따르려면 별도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문제는 그 절차가 혼인 신고서에 있다는 사실이다. 임신이나 출산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기도 전에 자녀의 성씨부터 결정해야 하니 이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자녀의 출생 이후엔 가정법원의 재판을 거쳐야만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다. 이 복잡한 절차는 오로지 어머니의 성을 따르고자 할 때만 생긴다. 자녀가 부모의 성을 따를 수 있게 하겠다는 목표라면 혼인 신고가 아니라 출생 신고 때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니 이번 개선안은 환영할 만하다.
관습적으로 ‘부계혈통’이란 말을 써왔기에 아버지의 성을 자녀가 물려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가족끼리는 ‘혈연관계’라 부르고 타인은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생물학적 관점으로 말하자면 부계혈통이란 없다. 아버지는 정자의 핵 하나만을 제공할 뿐 피는 단 한방울도 아기에게 전달하지 못한다. 이건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9개월여간 자궁에서 아기를 키워내지만 이때도 모체와 태아의 혈액은 태반이라는 조직을 사이에 두고 분리된 상태를 유지한다. 이렇게 보면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서로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이다. 헌혈과 수혈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일상적인 ‘핏줄’이라는 표현은 유전학적 지식이 발달하기 이전, 피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해 만들어낸 관용적 언어일 뿐이다.
하지만 염색체와 유전자로 접근해도 전통적인 부계 중심의 논리는 생물학적 관점과 차이를 드러낸다. 남자는 와이(Y)염색체를 가지고 있어 아버지와 아들로 이어지는 공통점이 있다고 하지만 한가지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엑스(X) 염색체는 와이 염색체보다 크기가 크고 유전자 수도 10배 이상 많다. 엑스 염색체는 약 800개 이상의 유전자를 담고 있는 반면, 와이 염색체는 남성 발달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포함해 100개 미만을 가진다. 가계를 잇는다고 여겨지는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와이 염색체를, 어머니에게서 엑스 염색체를 물려받는다. 유전자의 양적 측면에서 본다면, 아들의 유전적 구성 요소에는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제공한 유전 정보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반대로 아버지는 자신이 가진 엑스 염색체를 딸에게 물려준다. 유전적 구성 비율을 기준으로 보면, 아버지의 유전자를 더 많이 물려받는 자녀는 아들이 아니라 딸이다.
혈통 중심의 전통적 관념은 이처럼 생물학적 관점과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으며, 현대 가족의 실제 모습과도 거리가 있다. 출생 신고 단계에서 부모 협의로 성씨를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일은 오랜 관념과 과학적 이해, 그리고 현실 사이의 간극을 줄여나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이를 두고 시기상조라거나 부부 갈등이 심화하고 가족이 해체될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지만, 과거 호주제 폐지 논의 당시 일부 유림이 호주제가 없어지면 나라가 망하고 짐승이 될 거라며 거세게 반대했던 걸 떠올려보자. 낡아빠진 두려움은 넘어서자. 오히려 지금은 변화하는 가족 형태를 법적 테두리 안에서 포용하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발걸음을 더 재촉해야 할 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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