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약 제왕’ 일라이릴리의 다음 승부수…질병 치료 넘어 예방으로
이투데이
시총 1조달러 돌파…제약사 넘어 빅테크식 성장모델 추구
GLP-1, 단일 의약품 아닌 신약·생산 플랫폼으로 활용
온라인 약국으로 소비자와 직접 연결
엔비디아와 AI 슈퍼컴 구축…“생물학 이해에는 아직 한계”
세계 최대 제약사 일라이릴리가 비만 치료제 성공을 발판으로 제약산업의 사업모델 재편에 나섰다. 환자가 병에 걸린 뒤 치료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질병의 발생을 미리 차단하는 예방의학을 새로운 성장축으로 삼았다. 소비자와 직접 연결되는 온라인 판매망과 공통 신약·생산 플랫폼도 구축해 빅테크식 경영방식을 접목한다는 구상이다.
GLP-1, 단일 의약품 아닌 신약·생산 플랫폼으로 활용
온라인 약국으로 소비자와 직접 연결
엔비디아와 AI 슈퍼컴 구축…“생물학 이해에는 아직 한계”

▲데이비드 릭스 일라이릴리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11월 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D.C./AP뉴시스)
25일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릴리는 세계 제약사 가운데 처음으로 시가총액 1조달러(약 1450조원)를 돌파했다. 2023년 초 이후 주가는 세 배 이상 상승했으며 시장에서는 릴리를 전통적인 제약사보다 기술기업에 가까운 가치로 평가한다. 분석가들이 예상한 2030년까지의 연평균 매출 증가율은 약 15%로 동종업계 중간값의 세 배가 넘는다.
성장의 중심에는 비만 치료제 ‘젭바운드’가 있다. 젭바운드는 출시 후 첫 온전한 회계연도였던 2024년 49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 예상 매출은 이보다 약 네 배 많다. 릴리는 미국 GLP-1 시장의 약 60%를 차지한다. 블룸버그인텔리전스는 2030년 연간 1200억달러를 넘어설 세계 비만 치료제 시장에서 릴리의 점유율이 3분의 2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젭바운드는 국내에서는 같은 성분의 당뇨 치료제인 ‘마운자로’로 더 잘 알려졌다.
릴리는 후발주자였지만 체중 감량 효과와 부작용 개선, 낮은 가격, 선제적인 생산 투자로 시장을 뒤집었다. 2020년 이후 생산능력 확대에 투입하기로 한 금액만 500억달러 이상이다. 현재 120여 기업이 최소 190개의 비만 치료제 후보물질을 임상시험 중인 만큼 다양한 효능과 투약 편의성을 갖춘 제품으로 시장 전반을 장악한다는 전략이다.
릴리가 노리는 다음 시장은 예방의학이다. GLP-1 계열 약물이 체중 감량뿐 아니라 심혈관 질환과 수면무호흡증, 만성신장질환 위험도 낮추면서 활용 범위가 넓어졌다. 중독과 정신질환에도 효과가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릴리는 알츠하이머 치료제 도나네맙을 증상이 없는 환자에게 투여해 발병을 늦추거나 예방할 수 있는지도 시험한다.
지난달에는 수면주기 조절 치료제를 개발하는 센테사파마슈티컬스를 78억달러에 인수했다. 수면 조절 약물이 GLP-1처럼 다양한 질환에 폭넓게 쓰일 가능성에 베팅한 결정이다.
예방 중심 사업에는 넘어야 할 벽도 많다. 약값은 즉시 발생하지만 예방에 따른 의료비 절감 효과는 수년 뒤 나타난다. 보험사가 비용 대비 효과를 산정하기 어렵고 과잉진단과 불필요한 장기 투약 논란도 불가피하다.
릴리는 환자와의 직접 접촉을 늘리는 방식으로 해법을 찾는다. 온라인 약국 ‘릴리다이렉트’를 통해 가격 확인과 처방, 구매 절차를 단순화했다. 릴리의 GLP-1 치료제를 처음 사용하는 환자의 절반 이상이 릴리다이렉트를 포함한 온라인 경로를 이용한다.
신약 개발에서도 빅테크의 플랫폼 개념을 도입했다. GLP-1을 하나의 제품이 아닌 여러 호르몬을 결합해 다양한 약물을 개발할 수 있는 공통 기반으로 활용한다. 주사제 생산설비도 여러 의약품이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해 비용과 개발기간 단축을 추진한다.
AI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이다. 릴리는 엔비디아와 제약업계 최고 수준의 AI 슈퍼컴퓨터를 구축하고 생명의학 모델 학습에 착수했다. 자체 데이터를 학습시킨 AI 모델을 바이오기업에 제공하고 이들 기업이 확보한 데이터를 다시 받는 생태계도 마련했다.
다만 데이비드 릭스 릴리 최고경영자(CEO) 겸 회장은 현재 AI가 생물학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거나 추론하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단기간에는 신약 발견보다 복잡한 의료 행정과 서류 업무를 줄이는 분야에서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는 판단이다. 비만약으로 제약산업의 판도를 바꾼 릴리의 다음 시험대는 예방의학을 지속 가능한 사업으로 전환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