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회사 기업공개(IPO)를 통해 재무적투자자(FI) 투자금을 회수(엑시트·exit)하던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중복상장 규제 강화로 자회사 상장이 어려워지면서 FI 지분은 공개시장 대신 모회사 현금 인수, 자회사 매각, 합병, 계열분리 방식 등으로 처리되는 흐름이다.
2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중복상장 제도 개편을 앞두고 자회사 IPO를 전제로 짜였던 FI 엑시트 구조가 재편되고 있다.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가 상장 모회사의 자회사 상장을 원칙적으로 제한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하면서 자회사 IPO를 통한 회수 명분이 약해지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시장 관심도 단순 상장 허용 여부를 넘어 FI 회수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가장 최근 사례는 한컴인스페이스다. 한글과컴퓨터는 한컴인스페이스 보유 지분 26.08%를 319억원에 처분하기로 했다고 18일 공시했다. 한컴위드도 보유 지분 6.06%를 74억원에 처분하기로 했다. 한컴그룹이 처분하는 주식은 복수의 FI가 나눠 인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컴인스페이스는 올 2월 코스닥 상장 예비심사에서 미승인 통보를 받은 바 있다. 미승인 사유가 명확히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최대주주가 코스닥 상장사였던 지분구조는 IPO 재추진 과정에서 중복상장 논란을 키울 수 있는 부담 요인으로 거론돼왔다. 이번 거래가 마무리되면 한컴그룹 계열사가 보유한 지분은 정리되고, 20%대 지분을 보유한 최명진 대표가 최대주주에 오른다. 한컴인스페이스가 IPO를 접기보다 상장 모회사와의 연결고리를 낮춰 재도전 여지를 남긴 이른바 계열분리형 사례로 해석되는 배경이다.
규모 면에서 가장 큰 사례는 SSG닷컴이다. 이마트와 신세계는 이달 11일 각각 이사회를 열고 올림푸스제일차가 보유한 SSG닷컴 지분 30%를 공동 취득하기로 했다. 거래가 마무리되면 SSG닷컴 지분율은 이마트 65.1%, 신세계 34.9%로 재편되고 외부 FI 지분은 사라진다. 자회사 IPO를 통한 회수 대신 그룹 내부 현금으로 출구를 마련한 셈이다.
자회사 상장 대신 매각이나 합병 가능성이 부각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SK스퀘어는 IPO 시장 침체와 일부 자회사의 실적 부담이 겹치면서 상장보다 포트폴리오 재편 쪽으로 무게가 옮겨가는 모습이다. SK스퀘어는 SK쉴더스가 2022년 상장을 철회한 뒤 이듬해 EQT파트너스에 지분 일부를 매각했고, 최근에는 원스토어 경영권 지분 매각 가능성도 시장에서 거론되고 있다.
CJ올리브영은 중복상장 규제 강화로 단독 상장보다 모회사 CJ 주가를 통한 가치 반영이나 장기적 합병 가능성이 거론된다. 자회사 IPO를 대체하는 출구가 늘고 있지만 방식마다 부담은 남는다. 모회사가 FI 지분을 직접 사들이면 FI의 회수 문제는 해소되지만, 그 비용은 상장 모회사의 현금 유출과 재무 부담으로 옮겨간다.
합병을 택하면 합병 비율을 둘러싸고 모회사 일반주주와 자회사 주주 사이 이해상충이 불거질 수 있다. 매각은 당장 현금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지만 핵심 사업의 경영권 이전이나 낮아진 기업가치 논란으로 이어질 여지도 있다. 중복상장 규제가 자회사 IPO 가능성을 좁히면서 FI 엑시트 구조도 다시 짜는 모습이다.
과거에는 자회사 상장을 전제로 FI 투자를 유치한 뒤 공모시장에서 회수하는 방식이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투자 유치 단계부터 회수 방식과 비용 부담 주체를 함께 따져야 한다. 특히 풋옵션이나 회수 시한이 걸린 투자계약은 상장 무산 시 모회사 일반주주에게 어떤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쟁점이 될 전망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중복상장 규제가 강화되면 FI 입장에서는 투자할 때부터 풋옵션이나 동반매도권 같은 회수장치를 더 강하게 요구할 수밖에 없다"며 "모회사도 자회사 성장 자금을 끌어올 때 향후 FI 엑시트 비용이 일반주주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까지 함께 설명해야 하는 환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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