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무엇이든 만들어주는 재봉사 친구 [.txt]
한겨레
조은숙의 내일의 그림책
시리즈 그림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늘 올라와 있는 일본과는 달리 우리 출판계에서는 한 작가가 시리즈로 그림책을 작업하는 것이 그리 활발하지 않다. 그런데 김향랑 작가의 ‘숲속 재봉사’ 시리즈는 2010년 첫 책인 ‘숲속 재봉사’가 나온 후, 2024년 네번째 책 ‘숲속 재봉사의 옷장’까지 누적 10만부 이상이 팔리고, 올해 다섯번째 책의 출간 일정이 잡히는 등 독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첫 책은 겨울에 비둘기가 발이 시릴 것 같아 양말을 신겨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됐다. 동물을 담아내야 해서 자연으로 그림책의 무대가 정해진 후, 촘촘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지나쳤을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양한 빛깔, 아름다운 무늬, 기하학적인 균형과 조형미 등 자연물의 경이로운 생김새를 발견한 것이다. 이때부터 스스로를 ‘컬렉터’로 칭하는 작가의 섬세한 눈길과 손길이 발휘된다. 수국 꽃잎 치마, 맨드라미 씨앗 단추, 쑥부쟁이 꽃받침 브로치 등 너무나 작고 소박한 것들에게 쓰임을 척척 부여하는 작가의 시선이 놀랍다. 매끈하고 세련되기보다는 납작하고 투박하며 어눌한 느낌이 어릴 적 인형을 만들며 놀았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데, 자연 친화적인 공예품들이 정성스럽고 세심하게 담겨 있어서 한참을 들여다보게 한다.
14년에 걸쳐 책들이 나오면서 그 변화를 포착하는 것도 흥미롭다. 첫 책을 낼 때는 시리즈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런 덕택에 일반적인 시리즈물이 하듯 초기에 전체를 설계하고 거기에 따라 이후 책들을 내기보다는, 각 권의 변화를 더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었다. 중심 캐릭터인 재봉사는 처음에는 납작한 부조 작업으로 표현했는데, 세번째 책부터는 종이에 그려 표현했다. 네번째 책에서는 무대와 요소들을 입체로 세운 뒤 사진을 찍어 화면을 만들고, 작가가 직접 촬영을 하면서 더 많은 장면에서 더 깊은 공간감을 구현했다. 표현 방식의 변화는 사진 작업뿐만이 아니다. 콜라주를 통해 다양한 재료의 이질감으로 변화를 준 것에서 나아가, 자연에서 얻은 말린 재료, 실크스크린, 고무스탬프 찍기 등 여러 기법이 결합하면서 느낌은 더 풍부해진다.
재봉사 역시 뒷 권으로 가면서 존재감을 점점 드러낸다. 네번째 책의 “이렇게 넓은 숲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만나 친구가 되었을까?”라는 문장은 이 시리즈에서 재봉사의 생각이 처음으로 담긴 문장이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서 영감을 받아 쓴 문장으로, 광활한 우주 속 존재들의 연대감이 담겼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작가는 이 시리즈가 “살아오면서 나와 함께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모든 책이 “깊고 깊은 숲속에 옷 만들기를 아주 좋아하는 재봉사가 살았어요”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건네는 친절함’이다. 이것은 재봉사의 캐릭터에서 잘 드러나는데, 재봉사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만들어 주고 귀 기울여 주며 대가를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나는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는 당당함을 지니고 있다. 이 시리즈가 지닌 세계관은 타인을 자신의 기준으로 재단하지 않고 수용하는 것, 타인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는 ‘환대’의 첫걸음으로 다정한 눈길을 담아 수용하는 것이다.
그림책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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