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췌장암은 암이 상당히 진행될 때까지 특별한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아 흔히 '침묵의 암'이라고 불린다. 위암이나 대장암은 국가검진을 통해 조기에 발견할 기회가 있지만, 췌장암은 조기 발견 방법도 마땅치 않아 진단 시점에는 이미 수술이 어려운 상태인 환자가 적지 않다.
3일 의료계에 따르면 췌장은 위 뒤쪽, 척추 바로 앞인 ‘후복강(복막 뒷공간)’이라는 복부의 가장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장기다.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을 생성하고 소화 효소를 분비하는 등 인체 대사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위치적 특성 때문에 초음파나 일반 검사로는 병변을 조기에 발견하기 까다롭다.
국내 췌장암 환자는 인구 고령화와 식습관 변화 등으로 인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췌장암은 연령이 높아질수록 발생 위험이 커지며, 비만과 당뇨병 역시 췌장암 증가 요인 중 하나다.
국가암등록 통계를 보면 2023년 기준 국내에서 발생한 28만8613건의 암 가운데 췌장암은 남녀를 합쳐서 9748건, 전체 암 발생의 3.4%로 8위를 차지했다. 연령대별로 보면 60대가 28.3%로 가장 많았고, 70대가 28.1%, 80대 이상이 24.3%로 집계됐다. 인구 10만 명당 조발생률은 19.1건이다.
가장 큰 문제는 췌장에 암이 생겨도 초기에는 이렇다 할 전조 증상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약간의 소화불량, 명치 부위의 둔한 불편감, 원인 모를 체중 감소와 식욕 저하 등 일상적인 위장장애와 구분이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환자 스스로 단순한 위염이나 스트레스성 소화불량으로 가볍게 여기고 방치하다가 병을 키우기 쉽다.
백규현 서울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2주 이상 지속되는 소화불량, 이유 없는 체중 감소, 등까지 뻗치는 복통, 갑자기 악화한 당뇨병 등은 췌장암을 의심해 볼 수 있는 주요 증상이므로 주의가 필요하다”라며 “눈이나 피부가 노랗게 변하는 황달이 동반된 경우에는 이미 암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조금도 지체하지 말고 신속한 진료를 받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췌장암의 대표적인 위험요인은 흡연, 당뇨병, 만성 췌장염, 비만, 과도한 음주, 가족력 등이다. 이 가운데 흡연은 가장 강력한 위험인자로 알려져 있다. 흡연자는 비흡연자보다 췌장암 발생 위험이 2~3배 높다. 과도한 음주도 문제다. 술은 만성 췌장염을 유발할 수 있는데, 만성 췌장염은 결국 췌장암 발생 위험을 높이는 원인이 된다. 또한 비만과 당뇨병 역시 췌장암 발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수술과 항암치료가 췌장암 치료의 중심이다. 췌장암은 항암제 효과가 다른 암보다 제한적이어서 치료에 어려움이 컸으나, 최근에는 암세포의 유전자 이상을 직접 공격하는 표적치료제 ‘다락손라십(Daraxonrasib)’이 새로운 치료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해당 신약은 췌장암 발생과 성장을 주도하는 핵심 유전자 ‘KRAS 변이’를 직접 억제하는 기전으로, 미국 레볼루션 메디신스가 개발 중이다.
췌장암은 아직 완벽한 예방법이나 확실한 조기 검진 방법이 확립되지 않았다. 일상생활 속에서 위험 요인을 적극적으로 줄여나가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금연은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예방법이다. 이와 함께 절주, 적정 체중 유지, 규칙적인 운동, 그리고 당뇨병 관리를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
백 교수는 “거창한 목표보다는 식후 가볍게 걷는 습관을 들이고 일상에서 단 음료 섭취를 줄이는 등, 작은 생활 습관의 변화부터 시작하는 것이 췌장암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라며 “흔히 나타나는 소화불량이나 복통이라도 단순 위장장애로 치부하지 말고, 위험 요인이 있다면 반드시 전문의를 찾아 선제적이고 적절한 검사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