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패시브 시대 '고독한 가치평가'
머니투데이
2024년 전세계 펀드 시장에서 지수를 그대로 복제하는 패시브 자금이 처음으로 액티브를 넘어섰다. 역전된 흐름은 멈추지 않았고 그 격차는 벌어지고 있다. '시장을 이기려는 돈'보다 '시장을 그대로 사는 돈'이 주류가 된 것이다. 저비용·분산·편의성을 앞세운 패시브의 부상은 투자자 입장에서 분명한 진보다. 하지만 그 성장의 이면에서 가격을 만드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 충분히 이야기되지 않는다.
패시브 자금은 기업의 '가치'를 묻지 않는다. 지수 안에서의 '비중'과 '가격'만 보고 기계적으로 사고판다. 그래서 패시브가 커질수록 가치가 가격을 만들기보다 수급이 가격을 만드는 구조가 강해진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왝더독(Wag the dog)' 현상이다. 최근 글로벌 증시에서 하루 거래가 장 마감 동시호가로 쏠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부 시장에서는 하루 거래량의 3분의1이 종가에 몰린다. 지수를 추종하는 자금이 종가에 맞춰 기계적으로 체결되면서 그 기업이 싼지, 혹은 비싼지와 무관하게 가격이 결정되는 구간이 커지고 있다.
이런 흐름은 앞으로 더 강해질 것이다. 원유 가격이 전체 거래의 일부에 불과한 현물 물량에서 형성되듯 시장 전체의 가격은 점점 더 작아지는 '판단하는 돈'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가치를 따져 묻는 투자자의 비중은 줄고 그 가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금의 비중은 늘어난다. 패시브가 커질수록 정작 가격을 형성하는 판단의 토대는 얇아지는, 일종의 역설적 구조다.
그래서 가치를 판단하는 투자자의 무게는 오히려 늘어난다. 지난해 패시브를 이긴 액티브 펀드는 셋 중 하나에 그쳤고 10년 기준으로는 다섯에 하나꼴이었다. 숫자만 보면 가치평가는 점점 외로운 영역이 되어간다. 그러나 모두가 가격만 좇을 때 '이 자산의 적정 가치는 얼마인가'를 끝까지 묻는 소수의 인내는 그 희소성만큼 힘을 갖는다. 가격이 가치에서 멀어질수록 벌어진 간극을 메우는 것은 미리 가치를 계산해 둔 소수의 자금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가격이 아니라 가치를 계산하고 그 메시지를 시장에 던져야 한다. 이에 적정 가치가 어디쯤인지 제시하고 그 자리에 돈을 묶어두는 액티브 ETF(상장지수펀드)·펀드와 인내하는 투자자의 역할이 패시브의 성장과 함께 커진다. 이들이 사라지면 시장에는 가격만 남고 값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가치를 향한 인내는 단기적으로는 비효율처럼 보이지만 시장이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에 가깝다.
패시브를 통해 시장 전체를 손쉽게 담을 수 있게 된 지금이야말로 개인 투자자에게 '내가 산 가격이 그 가치에 합당한가'라는 질문이 중요하다. 가격은 군중이 만들지만 그 가격을 견디게 하는 것은 결국 가치에 대한 스스로의 확신이다. 수급이 만든 출렁임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무엇을 왜 보유하고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가격이 수급에 휘둘릴수록 출렁임의 폭도 깊어진다. 이때 진정한 가치를 향한 인내의 값어치도 함께 커진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두려워하며 파도를 피할 것이 아니라 더 큰 파도에 올라타는 법을 훈련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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