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이 종전 양해각서(MOU) 체결에 근접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고위 당국자가 12일(현지시각) 기자들과 한 전화 브리핑에서 “협상팀이 매우 좋은 위치에 있지만 아직 결승선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라며 “며칠 안에 서명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이날 오전만 해도 협상 타결 가능성을 “75%” 정도로 봤지만, 현재는 “80~85%”로 높아졌다고 말했다. 다만 “100%는 아니다”라며 이란 내부 승인 절차와 강경파 변수 때문에 최종 서명까지는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고 했다.
■“이란 핵물질 현장 폐기 뒤 반출하기로”
이 당국자는 익명을 전제로 한 브리핑에서 이번 양해각서가 미국 쪽에 다섯 가지 성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첫째는 호르무즈해협 재개방과 이란 항구에 대한 미국의 봉쇄 해제다. 둘째는 이란 핵 프로그램 해체를 위한 절차가 시작된다는 점이다. 셋째는 미국이 이란의 농축 핵물질을 확보하는 길이 열린다는 점이다. 그는 합의문에 “이 물질을 현장에서 파기한 뒤 국외로 반출한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설명했다. 넷째는 이란이 역내 폭력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하고, 다른 당사자들도 이란의 영토 주권을 존중하는 장기적 지역 평화 구상이다. 다섯째는 이란의 약속이 장기적으로 이행 가능한지 확인하기 위한 사찰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다.
다만 이 당국자의 설명은 양해각서 서명 즉시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이 미국에 넘어가거나 핵시설 해체가 완료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양해각서가 핵물질 처리와 핵 프로그램 해체로 가는 “직접적인 길”이라고 표현하면서도, 농축 물질의 파기와 반출 방식은 후속 기술협상에서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물질이 “매우 가연성 있고 민감한 물질”이라며 “삽과 배낭을 들고 가서 꺼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양해각서에는 서명 뒤 60일 동안 기술협상을 진행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핵 문제와 관련해 이 당국자는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확보하지 않겠다는 무기한 약속”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이 약속이 실제로 지켜지는지는 검증과 사찰 체계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또 미국이 이란의 민간 원자력 발전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아랍에미리트의 민간 원전 사례를 들며 “이란의 민간 발전소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 전력 생산에서 핵무기 개발로 넘어갈 수 있게 하는 인프라가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 처리는 이번 협상의 가장 민감한 쟁점이다. 시엔엔(CNN)은 앞서 미군이 이란 내 고농축 우라늄을 회수하는 고위험 특수작전 계획을 마련했다고 보도했다. 이 계획은 특수부대 등을 투입해 지하 시설에 묻힌 핵물질을 찾아 반출하는 방안이다. 시엔엔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군 사상자 발생과 이란의 보복, 경제적 파장 등 위험성을 감안해 작전 실행을 보류시켰다”고 전했다. 시비에스(CBS)도 미군과 에너지부가 합의 성사 이후 이란 핵물질을 확보·제거하는 비상계획을 논의해 왔다고 전했다. 이번 양해각서는 그런 군사적 회수 작전 대신, 기술협상과 검증 절차를 통해 핵물질을 처리하려는 외교적 우회로로 볼 수 있다.
■ “이란 동결자금 즉시 해제 없다”…핵물질 넘겨야 제재완화
이란이 받게 될 보상은 단계적이다. 이 당국자는 “이란은 양해각서 서명이나 협상 자체만으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란이 핵물질을 넘기면 일부 경제적 보상을 받고, 핵 프로그램이나 핵시설을 해체하면 추가 보상을 받으며, 역내 평화와 안정에 실질적으로 전념하면 더 많은 보상을 받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제재 완화와 동결자산 해제도 이란의 이행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다만 “서명 즉시 현금 지급은 없다”는 미국 쪽 설명과 별개로, 양해각서에는 60일 휴전 및 기술협상 기간 이란이 일정 범위에서 석유를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일시적 제재 유예 조항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액시오스는 미국이 호르무즈해협 재개방 뒤 이란에 60일간 석유 판매를 허용하는 임시 제재 면제를 제공하는 방안을 논의해 왔다고 전했다. 이는 이란에 단기 수입을 제공해 협상 신뢰를 쌓게 하려는 장치로 풀이된다.
이번 브리핑에서 미국 쪽이 특히 강하게 반박한 대목은 이란 쪽에서 흘러나오는 ‘합의 직후 대규모 자금 동결 해제’ 주장이다. 이란 매체들은 양해각서 초안에 60일 협상 기간 240억달러 규모의 동결자금을 해제하고, 그 절반을 협상 시작 전에 이란이 사용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보도했다. 또 뉴욕타임스는 이란 당국자와 외교관을 인용해 3000억달러 규모의 재건 투자기금 조성안이 논의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 쪽은 이런 설명을 부인하고 있다. 이 당국자는 일부 이란 매체의 보도를 “내부 강경파 설득을 위한 선전용”이라고 규정하며, 이란이 약속대로 핵물질을 넘기고 핵시설을 해체하는 등 구체적인 의무를 이행할 때만 단계적으로 경제 제재 완화와 자금 동결 해제 등 보상이 뒤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 “이란 합의, 이스라엘·걸프까지 포괄”…최종 승인·서명 장소는 변수
지역 안보 문제도 양해각서의 핵심축으로 제시됐다. 이 당국자는 이번 합의가 “역내 장기 평화”를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이는 이란이 역내 폭력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하는 동시에 다른 당사자들이 이란의 영토 주권을 존중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틀이 레바논, 이란, 걸프 연안국, 이스라엘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지역 평화 합의”라고 했다. 다만 이스라엘이나 걸프 국가들이 자위권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며,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거나 이란이 이를 지원할 경우 이란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의 반응은 변수로 남아 있다. 이 당국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통화했다며, 이스라엘이 합의 전문을 보고 “이란이 먼저 이행해야 미국이 혜택을 제공한다”는 구조를 이해하면 수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 쪽에 합의 조건을 둘러싼 회의론이 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네타냐후 총리를 비롯한 이스라엘 지도부는 이란의 약속 이행 의지에 회의감을 보여왔고, 독자적인 군사 행동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최종 승인 여부도 불확실하다. 미국 당국자는 이란의 민간·군사 쪽 협상 상대들이 최고지도자가 현재 합의 방향에 “편안해한다”고 전했다고 말했지만, 최고지도자의 공식 승인 여부를 직접 확인하지는 않았다. 그는 “이란 체제에서는 결국 최고지도자의 승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액시오스도 이란 쪽 고위급에서는 합의문이 승인됐지만, 최고지도자의 최종 재가 여부는 불확실하다고 전했다. 이란 내부에도 합의를 둘러싼 이견이 남아 있어 실제 서명까지는 막판 변수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이번 문서는 파키스탄의 중재 역할을 반영해 ‘이슬라마바드 선언’ 또는 ‘이슬라마바드 합의’로 불릴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엔엔(CNN)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양해각서의 명칭이 파키스탄의 중재를 기리는 방식으로 정해질 수 있다고 전했다. 서명 장소로는 유럽이 거론되고 있다. 미국 고위 당국자는 브리핑에서 “유럽은 미국과 이란 양쪽 모두에 중간 지점이 될 수 있다”고 했고, 액시오스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스위스 제네바가 유력한 서명 장소로 검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제이디 밴스 부통령의 서명식 참석 가능성에 대비해 미 공군 C-17 수송기 4대가 관련 장비를 싣고 유럽으로 출발했다고 전했다.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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