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윤
논설위원
“니 애비가 싸움질이나 하라고 가르치던? 이런 호로새끼가 있나? 스승은 그림자도 안 밟는 거야, 이 새끼야!” 유신 정권 말기인 1978년 강남 정문고를 배경으로 한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예비역 대위 출신 교련 교사가 자기 그림자도 밟지 말라며 군홧발로 학생들을 짓밟는다. 현수(권상우)의 명대사 “대한민국 학교 ×까라 그래”가 그의 군홧발에서 탄생했다.
2004년 개봉 당시 311만명이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아직도 ‘말죽거리’를 잊지 못하는 건 학교가 실제로 그랬기 때문이다. 1970~1980년대 군사정권 내내 교사 체벌로 인한 학생 사망·중상해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 학교는 국가에 복종하는 인간을 만들기 위해 군대식 폭력을 허용한 ‘병영’이었다.
그로부터 불과 20여년,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 ‘참교육’ 속 학교는 ‘말죽거리’와는 딴세상이다. 교사가 학생의 흉기에 찔려 죽고, 무고를 당해 자살하고, 학부모의 갑질에 무너지는 ‘무법지대’다. 답 없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초현실적인 물리력을 행사하는 교권보호국 나화진 감독관이라는 판타지가 필요했다. 훈장님께 자기가 맞을 회초리를 갖다 바치던 조선시대부터 수백년을 뇌리에 박힌 ‘때리는 교사, 맞는 학생’ 서사가 ‘갑질 학생, 피해자 교사’ 서사로 교체된 상전벽해를 ‘참교육’이 그려냈다.
민주화와 함께 체벌 거부 운동이 무르익었던 2010년 7월이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오아무개 교사가 학생의 뺨을 후려치고, 땅바닥에 패대기치고, 발로 걷어차고, 손바닥으로 밀어 날려버리는 무차별 폭행 동영상이 공개됐다. 무협 영화 속 장풍을 연상케 한다고 하여 ‘오장풍 사건’으로 불렸다. 이 사건은 2010년 진보 교육감들의 학생 인권 조례 제정, 2011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 등 체벌 금지로 이어졌다. 이후 2014년 1월 아동복지법 개정으로 정서적 학대를 포함한 아동학대 행위가 폭넓게 정의됐다. 이 법이 같은 해 9월 아동학대처벌법 제정과 결합되면서 아동 보호의 새 지평이 열렸지만, 정상적인 생활지도까지 정서적 학대로 신고할 수 있는 악성 민원의 길도 함께 열렸다.
유구한 체벌의 악습을 끊어낸 ‘체벌 금지’ 법률과 조례 제정은 분명 민주화라는 시대적 변화에 부응한 ‘교육 혁명’이었다. 다만 한국 사회의 욕망과 부조리가 응축된 폭발 직전의 낡은 학교를 그대로 둔 채, 그 체제를 지탱해온 권위주의라는 기둥만 뽑아버린 게 문제였다. 학생이 미래 역량과 공존하는 법을 배울 수 있고, 학부모는 믿고 맡길 수 있도록 학교부터 재설계했어야 했다. 최소한 권위주의를 대신해 질서를 유지할 새로운 법적, 행정적, 문화적 시스템이라도 갖췄어야 했다. 교육당국이 손 놓고 붕괴 위기 학교를 현장 교사들에게 떠맡긴 결과가 ‘참교육’이 극적으로 모사한 무법지대다.
진보 교육감으로 분류되는 안민석 경기도교육감 당선자가 “‘참교육’을 10회까지 다 봤다”며 교육활동보호국 설치를 제안했다. 안 당선자는 지난 16일 “교사들 중에서 특수부대 출신들, 해병대, 공수부대 출신들이 많다”며 “20~30명 정도를 (중략) 투입해서 (학생을) 계도하고 훈계를 통해서 학교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5일엔 ‘경기교육활동보호국 왜, 어떻게 만들 것인가?’ 토론회에서 “오늘 공론화를 끝으로 결단하겠다”며 보호국 신설 의지를 드러냈다. 일부 몰지각한 학부모와 위기 학생으로부터 학생들의 학습권과 교사의 교육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공감한다. 그렇더라도 권위주의 교육관을 바꾸기 위해 싸워온 진보 교육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특수부대” 운운한 발언도, 학생과 학부모의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추진되는 교권 보호 정책도 모두 우려스러운 퇴행이다.
한국 사회는 학교가 거대한 ‘교권보호국’이었던 시절을 힘겹게 지나왔다. 위력으로 학생을 제압하던 ‘나화진들’이 실존했던 과거의 학교가 현재와 미래의 대안일 수 없다. 더욱이 인공지능이 실시간으로 지식을 찾아주는 시대, 학교는 더 이상 안 당선자의 말처럼 “위압감”을 줘서 학생을 계도하고 지식을 주입시키는 곳이어서는 안 된다. 도파민 터지는 속전속결 인과응보와 카타르시스는 현실에서 불가능하기 때문에 드라마를 보며 환호하는 것이다. 현실을 바꾸는 건 토론과 숙의, 법과 절차, 시행착오와 개선 같은 지루한 민주주의다. 그것이 ‘말죽거리 잔혹사’를 넘어 ‘참교육’을 딛고 우리의 학교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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