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정 |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어느 성폭력 관련 토론회에서 참여자가 질문했다. “피해자가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면 차폐막을 설치해도 불안해해요. 가해자가 보복하지 않을까 걱정돼서요.” 연사는 단호하게 답했다. “검사가 역할을 해야죠, 피해자 보호 대책을 법원에서 받아내서 문제없게 해야 합니다.” 해당 연사는 미국 연방 검사 등을 역임한 형사법전공 여성 교수였다. 또 다른 콘퍼런스에서 참여자가 “피해자는 형사사법 시스템에 의지해서 신고했는데, 과정이 너무 험난하다”고 말하자 연사는 명쾌하게 답했다. “피해자 곁에 검사와 여러 지원자가 있고, 당연히 혼자 헤쳐 나가면 안 된다”고 답했다. 이 연사는 프랑스 남부지역 현직 여성 검사였다. 두 장면에서 나는 당황했다. 피해자 보호를 검사가 하는 거였어? 검사의 역할이 약자 편에 서는 거였나? 그게 이토록 단순한 명제였다는 점에 놀랐다. 한국에서도 검사가 성폭력 사건을 기소하고 법정에서 공소제기를 하지만, 피해자 편이라고 느낀 적이 별로 없어서다.
이 단순 명쾌한 이상은 앞으로 실현될 가능성이 더 낮아진다. 이른바 ‘검찰개혁’이 한 사건에서 검사가 범죄 피해자의 편이 될 가능성과 경로를 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6일 김용민·박은정 의원이 대표 발의한 ‘형사소송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보자. 고소인이 경찰의 불송치 결과 통지에 이의신청을 하면 검사가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는데, 개정안은 ‘검사는 송치받은 사건에 관하여 직접 보완수사를 할 수 없으며’라는 문구를 기재했다.(제245조의7 3항) 개정안은 불송치 통보 뒤 이의신청 기한 설정, 고발인도 이의신청 가능, 검사가 보완수사 요구를 문서로 명시한 뒤 요구사항 이행 여부 관리, 사법경찰관의 보완수사 기한 설정 등의 내용을 추가했다. 이는 모순적인 상황이다. 하나는 경찰 불송치 뒤 이의신청 방식이 매우 불안정하고, 비체계적이라는 점이다. 둘은 그런 상황에서도 검찰 직접 수사를 결단코 배제하기 위한 명문을 설정했다는 점이다. 보완수사 요구가 제대로 이행 안 되면 어떻게 되는가? 개정안은 각급 공소청장이 사법경찰관 소속 수사관서 장에게 직무배제나 교체를 요구하라고 한다. 이렇게 하면 제대로 시스템이 작동되나? 그렇다면 이 방식을 권한 남용 검사에게 적용하는 형사소송법을 만들면 안 되는가.
연일 ‘검찰개혁’이 시급한 정치과업이고, 검사의 보완수사권 폐지가 금과옥조의 프레임이 되는 게 성폭력 피해자 지원기관 활동가로서는 매우 불안하다. 그 전에 해결되어야 할 게 너무 많다. 첫째, 경찰의 수사 인력 확대와 예산 확충이다. 현재 여성청소년계는 너무 바쁜 나머지 신고하러 간 피해자를 설득해서 접수 자체를 만류하기도 한다. 모든 증거 자료를 일목요연하게 스스로 정리해 피디에프(PDF) 파일로 제출하는 피해자가 아니면 수사관이 직접 현장에 가거나 증거수집을 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느낀다. 둘째, 술과 약물에 의한 준강간이나 친밀한 관계 내 강간 등 통념에 의해 쉽게 불송치되는 점을 철저히 개선해야 한다. 편견에 의해 피해자 진술을 배척하면 안 되며, 성인지 감수성에 기반해 상황을 종합 판단하는 것은 수사기관의 책무여야 한다. 셋째, 수사를 종결하기 전에 피해자에게 알권리와 의견개진권을 제도로 보장해야 한다.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지난 24일부터 피해자의 기록 열람·등사 신청 대상이 확대됐다. 소송기록뿐 아니라 증거보전 서류, 기소 후 검사 보관 증거기록을 피해자가 열람·등사(신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피해자의 알권리가 경찰 단계에서도 보장되어야 한다. 넷째, 이의신청은 여전히 피해자에게 너무 큰 장벽이다. 스스로 이의신청서를 작성해서 받아들여지도록 소명해야 하는데, 그사이 가해자는 보복성 역고소 압박과 협박을 시작하고, 이 과정부터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다는 온라인 광고가 쏟아진다. 이의신청 방식이 아니어도 피해자가 수사·사법 절차에 의뢰할 방안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검사의 불기소에 대해 항고·재항고할 수 있으며, 관련 헌법소원 청구 자격도 인정된 바 있는데,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대해서도 불복할 피해자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입장문처럼 ‘검찰개혁’이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개악’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검찰개혁이 원칙인가? 범죄 피해자 보호도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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