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전환 돌파구, 독일에서 찾다]기업 키우는 산·학 협력
①학교·산업·정부 '연결'이 만드는 獨 스타트업 생태계
인공지능(AI) 전환(AX)·녹색 전환(GX)으로 요약되는 산업 변환기이자 '경제안보'로 대표되는 지경학적 전략이 주목받는 시대다. 전통 제조업 강국인 독일은 어떻게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한국에 주는 시사점이 무엇인지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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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중심지 알렉산더 광장에서 차로 약 15분, 운하를 따라 늘어선 한적한 로뮐렌 거리에 육중한 붉은 벽돌 건물이 나타났다. 과거 아그파 필름을 생산하던 공장이었던 이 부지는 현재 독일 스타트업 생태계 거점 CIC(Cambridge Innovation Center) 베를린으로 탈바꿈했다.
지난달 24일 방문한 이 건물 1층 로비에 들어서자 영화 '백투더퓨처'의 타임머신으로 알려진 드로리안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차량은 단순한 전시물이 아니라 입주 기업들이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실제 차량과 연동해 보여주는 시연 장치로 활용된다. 블록체인 기반 전기차 결제 솔루션 기업 등이 이 차를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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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인큐베이터·대학 '한 공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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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C 베를린은 미국·유럽·일본에 거점을 둔 공간 운영사 CIC의 베를린 캠퍼스다. 5개 층에 걸친 약 1만3000㎡ 규모의 이 공간은 최근 92%입주율을 기록 중이다. 단순히 공간만 빌려주는 공유 오피스가 아니라는 점이 높은 입주율의 배경이다.
이곳에는 베를린 경제법대의 창업지원센터인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베를린(SIB)'을 비롯해 엑셀러레이터, 교육기관, 기업들이 함께 자리 잡고 있다. 스타트업은 필요한 조언과 네트워크를 근거리에서 얻는다. 나아가 여러 대학의 실제 수업까지 이곳에서 진행 된다. 학생·창업가·대기업이 한 지붕 아래서 자연스럽게 섞이는 생태계가 형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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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설계에서도 생태계의 다양한 주체를 연계하기 위한 세심함이 묻어 나온다. 1층에는 입주자들의 아이디어 교류를 도모하고 외부에개방해 수익을 내는 레스토랑, 5층에는 최대 850명까지 수용 가능한 극장, 중간층에는 입주자들이 쉴 수 있도록 탁구대·게임시설을 구비한 '놀이터'가 있다.
매주 목요일엔 1층 식당에서 누구나 무료로 참여할 수 있는 '벤처 카페'가 열려 150~350명의 창업가가 자신의 사업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투자 제안을 주고받는다. 올해 말 '아시아 베를린 서밋' 등 굵직한 행사도 이 건물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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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중심으로 커지는 베를린 스타트업 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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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스타트업들의 활동도 한창이다. 입주 공간에 이르자 독일어로 운전학원(FAHRSCHULE)이란 팻말을 단 기아 니로가 보인다. 독일 모빌리티 스타트업 야크(Yaak)가 실증에 활용한 차량이다. 야크는 당초 운전면허 학원과 협력해 주행 데이터를 수집해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던 회사다. 우크라이나 전쟁 후 모빌리티 투자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자 기존 데이터를 로보틱스 분야로 전격 이식해 현재 증강현실 기술을 접목, 로봇의 판단기능을 고도화하는 기업으로 전환했다.
CIC 베를린이 상징하는 이 도시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수치로 저력을 증명한다. 여러 지역에 산업이 분산된 독일의 특성에도 독일 내 스타트업 약 20%가 베를린에서 창업됐다. 베를린이 배출한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은 21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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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도시에는 기초 연구가 사업으로 이어지도록 돕는 액셀러레이터·인큐베이터가 80개 이상이고, 벤처캐피탈 역시 50개 이상이다. 대기업들이 만든 스타트업 지원 시설도 다수있다(표 참조). 이 결과 스타트업은 베를린에서 7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특히 인공지능(AI) 분야 창업이 가파르다. 베를린 내 AI 관련 기업 683개 중 78%가 설립 10년 미만 스타트업이다.
생태계의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 민·관이 각자의 영역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도 유기적으로 작동한다. CIC베를린은 회원사 수수료 등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민영기관이다. 반면 CIC 베를린에 입주한 '베를린 파트너'는 시 상원 예산으로 운영되는 조직으로, 모든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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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연방정부도 스타트업 육성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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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전체로 시야를 넓히면 스타트업 열기는 더욱 뜨겁다. 독일 연방경제에너지부 산하 무역투자진흥처(GTAI)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 전역에서 약 3500개 스타트업이 신규 설립되며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같은 해 벤처캐피털 투자 금액은 84억 유로(약 12조 원)다.
창업된 기업들의 사업은 제조업 중심인 독일 산업의 특성을 반영하듯 기업간 거래(B2B) 서비스가 대부분(91%)이다. 정보통신기술(ICT)이 26.6%로 가장 많고, 헬스케어(10.6%)·산업재(5.9%)·모빌리티 및 물류(5.7%) 등 독일 주력 산업과 맞물린 분야에서 창업이 활발하다. 이러한 생태계는 베를린(18.8%)·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18.7%)·바이에른(15.0%) 등 지역별 산업 특색에 따라 고르게 분포한다.
독일 연방정부 차원에서도 차세대 강소기업으로 키우겠다는 목표 아래 스타트업 생태계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이그지스트(EXIST) 스타트업 팩토리'다. 이 프로그램은 대학·연구기관과 산업계 협력·금융 파트너가 함께 참여하는 공공·민간 파트너십 방식으로 설계됐다. 과학 기반 딥테크 창업을 늘리고, 연구실의 아이디어가 창업과 스케일업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가속화하는 것이 목표다. 지난해 10개 스타트업 팩토리가 선정됐으며, 126개 대학·연구기관과 144개 산업계 협력·금융 파트너가 참여한다.
연방정부의 '디이 허브(de:hub)' 이니셔티브도 스타트업 생태계 강화 정책의 한 축이다. 독일 전역 12개 지역, 25개 거점에서 스타트업과 대기업, 중견·중소기업, 연구기관, 투자자 등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다. 베를린의 딥테크, 함부르크의 물류·상거래 등 지역별 강점과 산업 분야를 묶어 협력과 사업화를 촉진하는 방식이다. 독일 연방경제에너지부 관계자는 "독일 경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여부는 결국 기업들의 혁신 역량에 달려 있다"며 생태계 강화에 대한 의지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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