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리인 선임 없이 인공지능 도움만으로 ‘나홀로 소송’을 벌인 일반인이 변호사를 상대로 승소해 관심을 모았다. 인공지능 발달로 법률 정보의 진입 문턱이 낮아지면서 전문가의 권위가 흔들리는 현실을 보여준 사례였다. 이처럼 에이아이가 지식과 정보를 대신할 수 있다면, 법률가에게 요구되는 양심’의 영역은 어떨까. 인공지능은 법관의 양심을 생성할 수 있는가?
한국과학기술학회(STS·학회장 전치형 한국과학기술원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가 올해 전기학술대회에서 기조 강연으로 선택한 주제다. 올봄부터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이 이 물음에 답했다.
문 전 재판관은 30일 대전 한국과학기술원 본원에서 열린 학술대회 강연에서 이 주제와 관련한 인공지능의 답변을 소개하는 것으로 운을 뗐다. “현재의 에이아이는 법관의 양심을 ‘생성’하거나 ‘소유’할 수는 없으나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양심적 판단의 ‘결과물’을 모사하는 수준입니다.”
법관의 양심은 판결의 중요한 잣대다. 대한민국 헌법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103조)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양심이란 “상황과 의식의 상호작용에서 생성되는 것인데 상황이야 수시로 변화하는 것이며 의식은 주체마다 개별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법관의 ‘양심’도 시대와 상황과 판사 개인에 따라 달라진다.
그는 법관의 ‘양심’이 상이하게 작용한 두 가지 판결을 사례로 제시했다. 첫째는 1985년 김근태 당시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의장이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만행을 입증하기 위해 법원에 신체 감정과 증거 보전을 신청했을 때 재판부가 기각한 사건이었다. 변호인들은 고문을 받았다는 흔적(상처 딱지)을 확인하려고 했지만, 판사는 “피고인이 검찰에서 묵비권을 행사했기 때문에 고문 여부로 증거 여부를 다툴 진술 내용이 없어 증거보전절차의 실익이 없다”고 했다. 결국 고문 사실은 공식적으로 증명되지 못했고, 그로부터 29년 만인 2014년에야 재심에서 “당시 수사관계자들이 협박, 강요, 고문 등을 통해 조서를 작성한 사실”이 공식화됐다. 김 전 의장이 세상을 뜬 지 3년 뒤였다.
두번째 경우는 문 전 재판관 본인이 지난 2006년 창원지방법원 부장판사 시절 본드 흡입 등으로 1심에서 징역 8개월을 받고 항소한 20대 청년에게 벌금형을 내린 사건이었다. 이미 여러 건의 전과가 있었기 때문에 평소대로라면 “기각해도 좋을 사안”이었지만 피고인의 불우한 성장기를 들여다보며 생각을 바꿨다.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몸은 아프고 의지할 가족도 없는 상황이었다. 재판부는 피고인 보석금을 낮춰주면서까지 풀어주고 병원에서 약물치료를 받도록 했다. “국가가 당신의 부모다. 최선을 다했다. 다음은 당신의 몫이다. 포기하지 말아라.” 선고 당일 재판정에서 청년에게 한 당부였다고 한다.
이처럼 법관의 상이한 ‘양심’을 놓고, 문 전 재판관이 주목하는 인공지능의 유용성은 판사가 자신의 판단에 대해 타당성 여부를 확인하는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법관이 심판하고자 할 때 결론이 양심에 따른 심판인지 성찰하는 과정에서 인공지능이 법관에게 반증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다”며 “‘만약 김근태 재판부’가 잠정적으로 신체감정 증거보전기각이라는 결론을 내렸더라도 인공지능에 물었더라면 그것이 양심에 따른 결론인지 다시 한 번 점검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짚었다. 판사의 직업적 특성을 고려할 때도 인공지능이 도움된다고 했다. “판사는 외부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윗사람이 반증 가능성을 제시해주기 힘들고 언론도 한계가 있지만, 인공지능과는 대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법관이냐, 인공지능이냐’ 양자택일 형식의 질문을 ‘법관이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로 수정해야 한다”며 “인공지능을 도구로 갖춘 양심적 법관이 최후 승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 전 교수는 ‘양심적 법관’의 자세를 갖추기 위해 인문학적 소양, 헌법·시민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강연 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어떻게 판사들이 어떻게 선함과 양심을 추구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이렇게 답했다. “법관은 법학이라는 감옥을 인문학 토대 위에서 만들어야 한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있고, 그다음에 법학이 있다. 사법연수원에서도 실무 과목 아니라 인문학적 교양, 시민교육, 헌법 교육을 해야 한다. 시민이 있고 법관이 있는 게 아니라, 시민 중에 법관이 있는 것이다. 법관도 시민이다.”
글·사진 이주현 한겨레 사람과디지털연구소 기자 edigna@hani.co.kr
댓글이 없습니다.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