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교황이 인간들에 던진 메시지[투데이 窓/최연구]
머니투데이
레오 13세 산업혁명때 인간 존엄성 천명
레오 14세 "AI,인간처럼 사랑할 수 없어"
기술 발전은 인간성과 공동선에 맞춰야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근대적 정교분리 원칙이 자리잡은 지 370여 년이 흘렀다. 하지만 중세 유럽의 권력 중심이었던 교황청의 영향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크다. 전 세계 가톨릭 신자는 14억 명이 넘는다. 교황청은 문명사의 중요한 갈림길마다 시대를 향한 메시지를 던져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되고 중동 전쟁이 확산될 때도 교황청은 어김없이 전쟁에 반대하며 평화를 호소했다. 최근 인류가 맞닥뜨린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를 맞아 교황청은 다시 한번 성찰의 목소리를 냈다.
지난 5월 말, 교황 레오 14세는 즉위 후 처음으로 역사적인 회칙을 발표했다. 제목은 '위대한 인간성(Magnifica Humanitas)'이다. 가톨릭의 회칙(encyclical)은 교황이 전 세계 교회와 신자들에게 제시하는 가장 권위 있는 가르침으로, 신자들이 받아들여야 할 윤리적·신앙적 지침이자 인류 문명의 방향에 대한 시대적 선언의 의미를 갖는다. 이번 회칙은 AI를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라 문명 방향을 결정할 거대한 전환점으로 규정한다. 1891년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Rerum Novarum)은 산업혁명의 노동 착취와 빈부격차 속에서 인간 노동의 존엄과 사회 정의를 천명했던 현대 가톨릭의 사회교리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그로부터 135년 만에 교황청이 다시금 기술 문명과 인간 존엄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회칙이 던지는 핵심 질문은 'AI 시대에도 인간이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가?'이다. 교황은 AI 자체를 악으로 보지 않으며, 오히려 의료·교육·과학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도구로 인정한다. 그러나 동시에 기술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고 강조한다. 기술은 그것을 설계하고 투자하고 통제하는 이들의 가치관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기술이 인간을 닮아갈수록, 우리는 오히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더 자주 되묻게 된다. 오늘날 거대 플랫폼 기업들은 방대한 데이터와 연산 자원을 독점한 채 인간의 감정, 소비, 노동, 심지어 정치적 판단까지 알고리즘으로 매개하고 있다.
유발 하라리가 '호모 데우스'에서 데이터가 인간 판단을 대체하는 '데이터교'의 위험을 경고했듯, 문제는 AI가 얼마나 똑똑해지는가가 아니라 인간을 숫자와 예측값으로만 읽으려는 관점 자체에 있다. 교황 역시 AI가 인간을 돕는 도구를 넘어, 인간 행동을 예측하고 유도하고 통제하는 권력으로 변질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특히 회칙은 인간을 '데이터 처리 체계'로 환원하려는 경향을 강하게 비판한다. AI는 인간의 언어와 감정을 모방할 수는 있어도, 인간처럼 경험하고 사랑하며 책임질 수는 없다. 인간은 관계와 기억, 고통과 연민, 윤리적 책임 속에서 성장하는 존재이지만, AI는 그렇지 않다. 트랜스휴머니즘이 인간 한계를 기술로 극복하고 의식까지 기계로 이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교황은 질병, 노화, 취약성 같은 인간의 불완전함 속에 진정한 인간다움이 있다고 본다.
노동 문제에 대한 회칙의 시선도 날카롭다. AI가 대량 실업과 양극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인간은 노동을 통해 공동체와 관계 맺고 자기 삶을 실현하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나아가 희귀 광물 채굴 노동자, 데이터 라벨링 노동자 등 보이지 않는 희생 위에서 성장하는 AI 산업 현실을 '새로운 식민주의'로 규정한다.
이번 회칙은 반(反) AI 선언이 아니다. AI를 반대하거나 해체하자는 게 아니라, AI를 인간성에 복속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AI 기술의 발전 방향을 인간 존엄과 공동선(common good)에 맞추자는 주장이다. AI는 갈수록 더 정교해지겠지만, 결코 인간 자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 교황이 제기한 문제의식은 '얼마나 인간을 닮은 AI를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AI 시대에 인간다움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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